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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억울하옵니다! 제가 배를 훔치려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까마귀 녀석이 푸드덕 날아오르는 바람에 떨어진 배가 제 소쿠리에 쏙 들어왔을 뿐이옵니다!"
황해도 봉산관아 동헌 마당, 포졸들에게 결박당한 한 사내가 흙바닥에 이마를 짓찧으며 피를 토하듯 소리쳤더랍니다. 멍석 위에 꿇어앉은 사내 곁에는 주먹만 한 황금빛 배 세 알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엔 표독스러운 눈빛의 한 양반이 삿대질하고 있었지요.
배밭 머리의 검은 불청객

때는 조선 숙종 임금 시절, 황해도 봉산의 과수원마을에는 우직하고 손재주 좋은 농투성이 칠복이가 살고 있었더랍니다. 칠복이는 환갑을 앞둔 노모에게 올가을엔 꼭 새 무명옷 한 벌 해 입히는 것이 소원인 착한 아들이었지요. 남의 집 품을 팔고 산에서 약초를 캐어 겨우겨우 엽전을 모으던 칠복이에게 그날 아침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약초를 캐러 가던 길, 고을의 소문난 토호인 배진사의 커다란 배밭 울타리 곁을 지나갈 때였지요. 워낙 먹음직스레 익은 배들이 담 너머까지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배나무 꼭대기에서 "까악, 까악!"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까마귀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올랐더랍니다.
그 서슬에 툭, 툭, 툭 소리를 내며 탐스러운 배 세 알이 곤두박질치더니, 칠복이가 등에 메고 있던 빈 약초 바구니 안으로 거짓말처럼 쏙 떨어져 버렸습니다.
"어이쿠! 이게 무슨 벼락 맞을 일인가!"
칠복이가 화들짝 놀라 소쿠리를 벗어 내려놓는 찰나, 배나무 뒤편 덤불에서 몽둥이를 든 장정들이 벼락같이 뛰쳐나왔습니다.
"도둑놈 섰거라! 진상할 황금배를 훔치는 놈을 드디어 잡았다!"
호랑이 굴에 끌려간 순둥이

장정들의 우두머리는 바로 배밭 주인 배진사의 집사 팽복이였고, 그 뒤에서 배진사가 비단 부채를 파닥거리며 걸어 나왔지요. 배진사는 고을 사또에게도 뇌물을 바쳐 사리사욕을 채우기로 악명 높은 모사꾼이었습니다.
"네 이놈 칠복아! 감히 대궐에 진상해야 할 귀한 청실배를 도둑질해? 그것도 가장 크고 실한 놈들만 골라서 담았구나!"
칠복이는 기가 막혀 펄쩍 뛰며 하소연했더랍니다.
"아닙니다, 나으리! 맹세코 제 손으로 딴 것이 아닙니다! 저 꼭대기에서 까마귀가 날아오르며 나뭇가지를 치는 바람에 배가 저절로 바구니에 떨어진 것입니다요!"
배진사가 코방귀를 뀌며 비웃었지요.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져 네 놈 바구니에 들어갔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이놈을 당장 결박하여 관아로 끌고 가거라!"
그리하여 칠복이는 도둑 누명을 쓰고 봉산관아 뜰에 내동댕이쳐진 것이었지요. 배진사는 사또 앞에서 수염을 쓸어내리며 엄벌을 촉구했습니다.
"사또, 저놈은 상습범입니다. 며칠 전부터 진상 배가 계속 사라져 길목을 지켰더니, 마침내 오늘 현장에서 저 배 세 알을 훔쳐 달아나다 잡혔습니다. 진상품을 축낸 대역죄니 엄히 곤장을 쳐서 다스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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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의 혜안과 이상한 배꼭지
당시 봉산 원님으로 부임해 온 정 사또는 겉으로는 온화하나 속은 칼날처럼 예리한 사람이었더랍니다. 정 사또는 마당에 꿇어앉아 피눈물을 흘리는 칠복이의 거친 손과 헐벗은 행색을 유심히 뜯어보았지요.
"칠복아, 배가 정말 저절로 떨어져 바구니에 담겼단 말이냐?"
"사또 나으리, 하늘이 알고 땅이 압니다. 까마귀가 푸드덕 날아가자마자 꼭지가 툭 부러지며 떨어진 것을 어찌합니까! 제게 털끝만 한 도심(盜心)이 있었다면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요!"
배진사가 헛기침을 하며 가로막았더랍니다.
"사또, 저놈의 혓바닥에 넘어가시면 아니 됩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란 말이 어찌 죄를 피하는 핑계가 되겠습니까? 물증이 저리 명백한데 곤장 백 대로 다스려 국법의 엄함을 보이셔야 합니다!"
정 사또는 잠시 수염을 만지작거리더니 포졸에게 명했습니다.
"저 멍석 위의 배 세 알을 이리 가져오너라."
사또는 배를 집어 들고 요리조리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사또의 눈빛이 번뜩였지요. 사또는 배를 내려놓더니 마당에 선 집사 팽복이를 서늘하게 쳐다보았습니다.
"팽복이라 했느냐. 네 놈의 소매를 털어 그 안에 든 것을 바닥에 내놓거라."
날카로운 칼날 뒤에 숨은 탐욕
느닷없는 사또의 호통에 팽복이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더랍니다.
"사, 사또… 소인의 소매엔 아무것도 없사옵니다."
"네 놈이 정녕 매를 벌겠느냐! 여봐라, 저놈의 품을 뒤져라!"
포졸들이 달려들어 팽복이의 도포 자락을 뒤지자, 찰그랑 소리와 함께 작고 날카로운 과도 하나가 마당으로 떨어졌습니다. 칼날 끝에는 배의 즙과 거뭇한 진액이 아직 마르지 않은 채 묻어 있었지요.
정 사또가 배 세 알을 높이 치켜들며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배진사와 팽복이는 똑똑히 보아라! 까마귀가 가지를 건드려 배가 떨어졌다면 꼭지가 거칠게 뜯기거나 꺾여 있어야 마땅하거늘, 이 배들의 꼭지는 아주 예리한 칼로 비스듬히 베어낸 자국이 역력하다! 꼭지를 잘라낸 지 반각도 지나지 않았는데, 저 칠복이란 자에겐 칼 한 자루 없었느니라!"
배진사가 사시나무 떨듯 떨며 말을 더듬었더랍니다.
"그, 그것은… 도둑놈이 칼로 베어 딴 것이겠지요!"
"닥쳐라! 그렇다면 칠복이가 훔치지도 않은 칼이 어찌 네 놈 집사의 품에서 나오는 것이냐? 팽복이 네 놈, 사실대로 고하지 않으면 네 다리뼈를 분질러 놓을 것이다!"
사또의 추상같은 호령에 겁에 질린 팽복이가 결국 털썩 주저앉아 실토하고 말았습니다. 진상용 청실배는 원래 배진사가 한양의 권세가에게 뇌물로 바치려고 미리 빼돌려 숨겨 둔 것이었지요. 수량이 모자라자 마침 배밭 담장을 지나가던 칠복이를 발견하고, 팽복이가 칼로 배를 잘라 바구니에 던져 넣은 뒤 도둑으로 몰아 장부의 구멍을 메우려 했던 흉계였던 것입니다. 까마귀가 날아오른 것은 팽복이가 덤불 속에서 배를 던지려다 까마귀 둥지를 건드렸기 때문이었지요.
맺으며
모든 음모가 밝혀지자 정 사또는 배진사의 전답 절반을 몰수하여 고을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고, 배진사와 팽복이의 볼기에 곤장 쉰 대씩을 쳐서 변방으로 귀양을 보냈더랍니다. 억울한 누명을 벗은 칠복이는 사또로부터 억울한 옥살이 대신 포상금을 넉넉히 받아, 어머니에게 따뜻한 새 무명옷을 지어 올리고 오래도록 효도하며 평안히 살았지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말처럼, 세상살이엔 기막힌 우연이 억울한 의심으로 둔갑하는 일이 참으로 많지요. 허나 사리사욕으로 남을 함정에 빠뜨린 자는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법이니, 참된 진실은 가릴 수 없는 법이랍니다. 혹시 여러분도 억울하게 까마귀 날아 배 떨어진 격으로 오해를 샀다가, 뜻밖의 단서로 누명을 벗은 기막힌 이야기를 알고 계신지요?
다음 이야기 예고: 밤마다 한양 도성의 기와를 훔쳐 달아나는 의문의 괴한과 그 뒤에 숨겨진 효자의 눈물겨운 사연이 이어집니다.
※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 야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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