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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대왕 시절, 충청도 홍주 땅의 한 주막거리에서 대낮부터 서슬 퍼런 곡소리가 터져 나왔더랍니다.
"내 피 같은 삼백 냥을 훔쳐 가고도 발뺌을 하느냐! 저놈의 다리몽둥이를 당장 분질러라!"
포졸들에게 멱살을 잡힌 채 질질 끌려가던 사내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목이 터져라 결백을 외치고 있었지요.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린 품팔이꾼

끌려가는 사내의 이름은 김덕삼으로, 늙은 홀어머니를 모시며 남의 집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심성 고운 품팔이꾼이었습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루 품삯을 모아 어머니의 천식 약을 짓는 것뿐이었지요. 반면 그를 도둑으로 몬 자는 고을에서 소문난 구두쇠이자 토호인 배 참봉이었습니다. 배 참봉은 욕심이 끝이 없어 소작인들의 피고름을 짜내기로 악명이 자자한 자였지요.
배 참봉은 관아 마당에서 원님을 향해 길길이 뛰며 소리쳤습니다.
"사또! 어제 저놈에게 제 사랑방 도배를 시켰는데, 벽장 안 궤짝에 넣어둔 엽전 삼백 냥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방에 드나든 자는 저놈뿐이니 범인이 명백하지 않습니까!"
덕삼은 억울함에 피눈물을 흘리며 멍석 위에 엎드렸습니다.
"사또 나리,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소인은 벽장 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제 품삯으로 받은 엽전 서른 닢이 제 가진 돈의 전부입니다!"
주막 구석의 꾀죄죄한 선비

사또는 배 참봉의 세도에 눌려 덕삼의 등에 모진 곤장을 치라 명했습니다. 볼기가 터져 피가 배어 나오는 광경을 관아 담장 너머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한 사내가 있었지요. 갓은 찌그러지고 도포 자락은 흙탕물에 전 선비 차림이었으나, 번뜩이는 눈빛만은 예사롭지 않은 암행어사 박문수였습니다.
박문수는 날이 저물자 슬그머니 주막으로 가 덕삼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받아왔다는 품삯 주머니를 안고 통곡하고 있었지요. 박문수가 주머니를 건네받아 엽전들을 엽전꾸러미에서 하나씩 훑어보던 중, 유독 눈에 띄는 엽전 한 닢을 발견했습니다.
"노형, 이 엽전을 잘 보시오. 엽전 구멍 가장자리에 붉은 옻칠 자국이 살짝 묻어 있고, 옆면에 칼로 새긴 듯한 작은 칼자국이 있지 않습니까?"
박문수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는 엽전을 품속에 소중히 넣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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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열린 원님의 칼날 같은 공초
다음 날, 원님이 덕삼에게 마지막 형벌을 내리려던 참이었습니다. 꾀죄죄한 행색의 박문수가 불쑥 동헌 마당으로 걸어 들어오더니 큰소리로 외쳤지요.
"잠깐 멈추시오! 내 이 도둑놈의 죄를 명백히 밝힐 증거를 가지고 왔소!"
배 참봉은 코웃음을 치며 수염을 바르르 떨었습니다.
"어디서 굴러먹던 거지 선비 놈이 감히 관아에 난입하느냐! 여봐라, 저놈도 함께 매우 쳐라!"
박문수는 태연하게 품에서 엽전 한 닢을 꺼내 원님에게 보였습니다.
"배 참봉 나리, 잃어버렸다는 삼백 냥 궤짝 안에 평소 어떤 돈들이 들어 있었소? 설마 자기 돈의 생김새도 모르고 소송을 건 것은 아니겠지요?"
배 참봉은 의기양양하게 턱을 치켜들었습니다.
"흥! 그 돈은 장작 팔고 곡식 판 돈을 십 년간 푼푼이 모아둔 것이오. 엽전이야 다 같은 상평통보지, 내가 엽전 얼굴까지 일일이 기억한단 말이냐!"
궤짝 밑에 숨겨진 엽전 한 닢의 진실
그 순간 박문수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울려 퍼졌습니다.
"그렇다면 이 엽전은 어찌 설명하겠소! 이것은 덕삼이가 어제 품삯으로 받았다며 내놓은 서른 닢 중 하나요. 붉은 옻칠이 묻어 있고 칼자국이 나 있지!"
배 참봉이 비웃으며 쏘아붙였습니다.
"그게 어쨌단 말이냐? 저놈이 딴 데서 얻어온 돈이겠지!"
"아니오! 이것은 참봉 나리의 궤짝 밑바닥에 오랫동안 눌려 있던 돈이오!"
박문수는 품 안에서 마패를 꺼내 번쩍 치켜들었습니다.
"암행어사 출도야!"
순식간에 사방에서 역졸들이 번개처럼 들이닥쳤습니다. 박문수는 사색이 된 배 참봉을 쏘아보며 차갑게 말을 이었지요.
"내가 어젯밤 너의 사랑방 궤짝을 샅샅이 조사했다. 붉은 옻칠을 한 궤짝 모서리가 깨져 있었고, 그 틈에 끼어 있던 이 엽전과 똑같은 칼자국이 궤짝 안쪽 바닥에 선명하게 남아 있더구나! 너는 덕삼에게 품삯을 줄 때 바로 그 궤짝에서 돈을 꺼내 주었다. 삼백 냥이 몽땅 털렸다면서, 털린 궤짝 밑바닥에 박혀 있던 돈이 어찌 어제 덕삼의 품삯으로 들어갔단 말이냐!"
배 참봉은 털썩 주저앉아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 그것은……."
"네놈은 애초에 삼백 냥을 도둑맞은 적이 없다! 소작료를 감면해 달라는 덕삼의 말을 괘씸히 여겨 품삯을 주고는, 도둑 누명을 씌워 덕삼의 집터와 논을 빼앗으려 자작극을 벌인 것이지!"
박문수의 추상같은 호통에 배 참봉은 결국 머리를 조아리며 모든 죄를 자백하고 말았더랍니다.
맺으며
배 참봉은 곳간의 곡식을 몰수당하고 먼 변방으로 귀양을 갔으며, 덕삼은 누명을 벗고 어머니와 함께 평온한 삶을 되찾았지요. 욕심에 눈이 멀어 남을 해치려던 자는 자기가 쥐여준 엽전 한 닢에 발목이 잡혀 파멸했으니,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도 결코 빠뜨리는 법이 없음을 보여준 셈이었더랍니다.
혹 여러분도 작은 거짓말로 남을 모함하려다 제 꾀에 넘어가 혼쭐이 난 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다음 이야기 예고: 한밤중 공동묘지에서 피 묻은 소복을 빨던 여인의 기이한 정체
※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 야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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