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담·설화

남한강 물길 위에 우뚝 솟은 세 바위와 비단 복주머니에 숨겨진 독약

지은미소 2026. 10. 2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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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 맑은 물결이 굽이쳐 흐르는 충청도 단양 땅,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던 어느 가을 새벽이었습니다. 강가 나루터에 시퍼렇게 질린 얼굴의 사내 하나가 허겁지겁 뛰어오더니 뱃사공의 멱살을 잡고 울부짖었지요.

"사공, 내 아내가 물에 빠졌소! 저기 저 바위 곁으로 가라앉았단 말이오!"

강마을의 부유한 선비와 두 여인

때는 조선 중종 시절이었습니다. 단양 관아 인근에 대대로 비옥한 전답을 물려받아 부유하게 살아가던 윤진사라는 양반이 있었더랍니다. 윤진사는 온후한 성품이었으나 마흔이 넘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어 늘 가슴 한구석에 깊은 시름을 안고 살았지요.

그의 본처인 배씨 부인은 현숙하고 바느질 솜씨가 빼어난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섬겼지만,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늘 고개를 들지 못했지요. 배씨 부인은 향주머니를 짓는 솜씨가 남달라 붉은 비단에 금실로 복(福) 자를 수놓은 복주머니를 남편 허리춤에 늘 채워 주곤 했습니다.

"서방님, 이 복주머니 안에는 액운을 쫓는 마른 쑥과 사향을 넣어 두었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하지만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가문의 성화에 못 이겨 윤진사는 결국 화려한 미모를 지닌 소실 옥섬을 들였습니다. 옥섬은 젊고 아양을 잘 떨었으나 욕심이 끝이 없었지요. 그녀는 본처를 내치고 자신이 윤씨 가문의 당당한 안주인이 되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첩실의 임신과 본처의 눈물

얼마 지나지 않아 옥섬이 회임을 하였습니다. 소실의 배가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자 집안의 모든 기운이 옥섬에게로 쏠렸지요. 윤진사는 기쁨에 겨워 날마다 옥섬의 처소만을 찾았고, 본처 배씨 부인은 별채 구석에서 홀로 찬밥을 삼켜야 했습니다.

옥섬은 배를 내밀며 배씨 부인의 처소 앞을 거들먹거리기 일쑤였습니다.

"형님, 이 뱃속의 아이가 아들이라 하더이다. 진사 어르신의 대를 이을 귀한 핏줄이니, 이제 헛간 신세를 면치 못할 분이 누구인지 훤하지 않습니까?"

배씨 부인은 피눈물이 났지만 그저 입술을 깨물며 묵묵히 복주머니만 수놓을 뿐이었습니다. 윤진사는 아내의 야윈 얼굴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옥섬이 낳아 줄 핏줄에 눈이 멀어 본처의 슬픔을 외면했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옥섬은 약방에서 몰래 독초인 투구꽃 뿌리를 구해 가루를 내었습니다. 남편의 마음이 혹여나 조강지처에게 다시 돌아갈까 두려워, 배씨 부인에게 누명을 씌워 관아에 고발하고 영영 쫓아내려는 무서운 음모를 꾸민 것이었지요.

강물 위의 배와 비열한 함정

늦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던 날, 옥섬은 윤진사에게 남한강으로 뱃놀이를 가자고 졸랐습니다.

"나으리, 가슴이 답답하여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맑은 강바람을 쐬면 뱃속의 아이도 편안해질 터이니 배를 띄워 주십시오. 형님도 함께 가시지요."

배씨 부인은 마지못해 작은 나룻배에 올랐습니다. 남한강 한가운데에 이르러 윤진사가 강 건너 풍경을 바라보며 시를 읊조리던 그때, 옥섬이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비명을 질렀지요.

"아이고, 배야! 형님이 아까 건넨 대추차를 마셨는데 배가 찢어질 듯 아픕니다! 형님이 내 아이를 죽이려 독을 탔어요!"

옥섬은 고통스러운 척 몸부림을 치다가 배씨 부인을 거칠게 밀쳤습니다. 기우뚱한 배 위에서 중심을 잃은 배씨 부인은 차가운 강물 속으로 풍덩 빠지고 말았지요.

"부인! 멈추시오!"

윤진사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으나, 물살은 거셌고 배씨 부인의 옷자락은 이내 푸른 물결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옥섬은 젖은 눈으로 윤진사의 옷소매를 잡으며 흐느꼈지요.

"나으리, 저 여자가 저를 해치려다 천벌을 받아 빠진 것입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의원을 부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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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서 건져 올린 단서와 밝혀진 죄

놀란 윤진사는 서둘러 나루터로 배를 돌려 관아의 포졸들과 함께 강바닥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다행히 배씨 부인은 강 하류의 갈대숲에 걸려 기적적으로 숨이 붙어 있는 채로 발견되었지요.

소식을 들은 옥섬은 낯빛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배씨 부인이 정신을 차리고 관아에 억울함을 호소하자, 단양 현감은 세 사람을 동헌 마당으로 불러 모았더랍니다. 옥섬은 현감 앞에서 억척스레 거짓을 고했지요.

"사또 나으리, 저 여인이 첩실인 저를 시기하여 독을 먹이려 했습니다! 저 여인의 치마폭을 뒤져 보십시오, 독약 가루가 나올 것입니다!"

현감이 명하여 배씨 부인의 짐과 옷을 뒤졌으나 독약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배씨 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지요.

"사또 나으리, 저는 결코 독을 품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 남편의 허리춤에 달린 붉은 비단 복주머니를 열어 보아 주십시오."

윤진사가 의아해하며 제 허리춤의 주머니를 끌러 바치자, 배씨 부인이 말을 이었습니다.

"아까 배에 오르기 전, 옥섬이 저 몰래 제 소매 속에 무언가를 쑤셔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것을 꺼내 남편을 지켜 달라는 마음으로 서방님의 복주머니 안쪽에 숨겨 두었습니다."

현감이 비단 복주머니를 뒤집자 향기로운 약초 사이에 싸여 있던 하얀 종이 쌈지가 툭 떨어졌습니다. 종이를 펼치자 서슬 퍼런 잿빛 가루가 쏟아져 나왔지요. 옥섬이 배씨 부인에게 누명을 씌우려다 제 꾀에 넘어가 버린 투구꽃 독가루였습니다.

"이 독은 약방 문서를 대조해 보면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 금방 알 수 있을 터, 옥섬 너는 더 이상 발뺌하지 못할 것이다!"

현감의 호통에 옥섬은 사시나무 떨듯 떨며 주저앉았고, 이내 자신이 지은 간악한 죄를 모두 자백하고 말았습니다.

바위가 된 세 사람

윤진사는 그제야 자신이 첩의 교태와 욕망에 눈이 멀어 조강지처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피눈물을 흘리며 배씨 부인의 손을 잡고 무릎을 꿇었지요.

"부인, 내가 몹쓸 놈이오. 내 눈이 멀어 당신의 그 깊은 마음을 보지 못했소!"

옥섬은 곤장을 맞고 옥에 갇혔으나, 사람의 시기와 질투가 남긴 흉터는 쉬이 아물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세 사람은 저마다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고, 그 원통하고 기이한 사연은 강물에 스며들었더랍니다. 훗날 남한강 푸른 물길 한가운데에 세 개의 바위가 우뚝 솟아올랐으니, 사람들은 이를 '도담삼봉'이라 불렀지요.

가운데 당당하게 솟은 바위는 첩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남편봉이요, 북쪽에서 홑치마를 두른 듯 돌아앉아 남편을 원망하는 바위는 처봉이며, 남편을 바라보며 교태를 부리는 듯 배를 내민 작은 바위는 첩봉이라 전해진답니다.

맺으며

조강지처를 버리고 헛된 욕망에 눈먼 사내와 남을 해치려다 스스로 덫에 걸린 여인의 업보는 결국 차가운 돌이 되어 물길 위에 영원히 남겨졌습니다. 붉은 비단 주머니 속에 담겼던 정성과 음모는 오늘날에도 푸른 강물 아래서 조용히 출렁이고 있는 듯합니다. 여러분의 고장에도 질투와 탐욕이 빚어낸 기이한 바위나 물길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지요?

다음 이야기 예고: 밤마다 서당 훈장의 방을 엿보던 아리따운 여우 여인의 기이한 혼례.

※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 야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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