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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지리산 자락의 깊은 골짜기에서 피비린내와 함께 쇳소리가 진동했더랍니다. 횃불 수백 개가 산비탈을 붉게 물들이며 타오르는데, 바위 꼭대기에 선 한 사내의 등 뒤로 붉은 날개가 펄럭이고 있었지요. 그 날개는 사람의 살갗에서 돋아난 진짜 깃털 날개였으니, 관군들은 사시나무 떨듯 칼자루만 쥐고 얼어붙었더랍니다.
날개 달린 아이의 울음소리

조선 성종 임금 시절, 전라도 남원부 운봉현의 메마른 산골 마을에 천민 백정 출신인 최달석이라는 사내가 살고 있었더랍니다. 달석은 착하고 과묵하여 그저 가난한 아내와 함께 굶지 않고 평온하게 사는 것만을 바라는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달석의 아내가 달포 만에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아이의 양 겨드랑이에 붉고 푸른 비늘과 함께 보드라운 깃털이 돋아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천장을 훌쩍 날아올라 서까래에 매달리더니 방긋 웃었더랍니다.
"여보, 이 아이는 하늘이 내린 영웅, 우투리예요! 하지만 나라에서 알면 역적의 싹이라며 우리 세 식구를 몰살할 것입니다."
달석의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의 겨드랑이에 돋은 깃털을 가위로 잘라내려 했지요. 그러자 달석이 아내의 손을 덥석 붙잡았더랍니다.
"안 되오. 하늘이 백성의 원통함을 풀라고 보낸 아이를 어찌 해친단 말이오. 내가 목숨 걸고 지키겠소."
달석은 아이에게 '우투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지리산 깊은 바위굴 속에 숨겨 홀로 키우기 시작했더랍니다.
탐관의 칼날과 억새풀의 비밀

우투리가 자라 열다섯 소년이 되었을 무렵, 운봉현에 새로 부임한 현감 배도영은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기로 악명 높은 자였지요. 배도영은 백성들의 땅과 가축을 닥치는 대로 빼앗고는, 늙고 병든 노인들까지 노역으로 몰아세워 제 호화로운 별장을 짓게 했더랍니다.
참다못한 달석이 관아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애원했더랍니다.
"사또 나리, 마을에 먹을 곡식이 한 톨도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제발 이번 조세만은 탕감해 주십시오."
그러자 배도영은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달석의 뺨을 짓밟았지요.
"천한 백정 놈이 감히 수령의 정사에 토를 달아? 여봐라, 이놈을 옥에 가두고 지리산에 역적 소굴이 있다는 소문의 배후를 캐물어라!"
배도영은 이미 지리산에 비범한 도적이 숨어 백성들을 모은다는 흉흉한 소문을 듣고 의심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옥에 갇힌 달석을 구하기 위해, 마침내 지리산 바위굴에서 한 청년이 내려왔더랍니다. 그가 바로 겨드랑이에 찬란한 날개를 활짝 편 우투리였지요.
바위굴의 기습과 어머니의 눈물
우투리는 바람처럼 관아를 덮쳐 옥문을 부수고 아버지를 구출해 지리산 칠선계곡으로 달아났더랍니다. 날개를 달고 하늘을 솟구치는 우투리의 신통력 앞에 관군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지요. 배도영은 간담이 서늘해져 한양에 파발을 띄우는 한편, 홀로 마을에 숨어 있던 우투리의 어머니를 기어코 잡아채고 말았더랍니다.
배도영은 인두를 달구어 어머니의 발바닥을 지지며 잔인하게 윽박질렀지요.
"네놈의 자식이 날개 달린 괴물이라지? 그놈을 죽일 방도를 대지 않으면 네 사지를 찢어 까마귀 밥으로 던져줄 것이다!"
어머니는 모진 고문에 정신이 혼미해져 결국 피를 토하며 울부짖었더랍니다.
"우투리는 쇠칼이나 화살로는 상하지 않소… 오직… 지리산 꼭대기 제단 옆에 자란 검은 억새풀을 베어 만든 활과 화살로만 숨통을 끊을 수 있소…"
배도영은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즉시 사냥꾼들을 풀어 억새풀을 꺾어 화살 석 장을 만들게 했더랍니다.
거짓과 덫이 만든 함정
배도영은 군사 삼백 명을 이끌고 어머니를 앞세워 지리산 바위굴을 에워쌌더랍니다. 굴 앞에는 수천 석의 좁쌀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이는 우투리가 장차 굶주린 백성들을 먹이고 군사를 일으키려 모아둔 양식이었지요.
"우투리야! 네 어미의 목숨이 아깝거든 당장 나와 무릎을 꿇어라!"
배도영의 외침에 굴속에서 날개를 활짝 편 우투리가 솟구쳐 올랐더랍니다. 배도영은 비열하게 웃으며 준비해 간 억새풀 화살을 시위에 얹어 우투리의 심장을 향해 쏘았지요.
피익—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화살이 우투리의 가슴팍에 정확히 꽂혔더랍니다.
"크윽!"
우투리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위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그의 겨드랑이에서 돋아났던 날개는 힘없이 꺾여 피로 물들었더랍니다.
"하하하! 천하의 장수라더니 한낱 풀포기 화살에 고꾸라지는구나! 역적 놈의 목을 베어 한양으로 보내라!"
배도영이 환호성을 지르며 직접 환도를 빼 들고 우투리의 시신을 향해 다가갔더랍니다.
피어난 억새꽃과 지리산의 심판
하지만 쓰러졌던 우투리가 번쩍 눈을 뜨며 배도영의 칼날을 맨손으로 꽉 쥐어 부러뜨렸더랍니다!
"네놈… 어찌 살아있는 것이냐! 네 어미가 분명 억새풀 화살이 네 약점이라 하지 않았더냐!"
배도영이 하얗게 질려 뒤로 나자빠지자, 우투리가 피 묻은 가슴에서 억새풀 화살을 쑥 뽑아내며 차갑게 말했더랍니다.
"어머니는 너를 속인 것이다. 내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것은 백두산의 푸른 콩으로 빚은 화살뿐. 어머니가 말한 검은 억새풀은… 바로 우리 가문의 억울한 피를 깨우는 신호탄이다!"
어머니가 모진 고문 속에서도 아들을 살리고 원수를 유인하기 위해 거짓 약점을 흘렸던 것이지요. 우투리가 뽑아 든 억새풀 화살을 허공으로 던지자, 바위굴 주변에 쌓여 있던 수천 석의 좁쌀들이 일제히 푸른 갑옷을 입은 신병(神兵)으로 둔갑하여 솟구쳐 올랐더랍니다!
"도적의 무리에게 백성의 피눈물을 돌려주어라!"
우투리의 호령과 함께 수천의 군사가 관군을 에워쌌고, 사리사욕에 눈이 멀었던 탐관 배도영은 겁에 질려 도망치다 칠선계곡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져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더랍니다.
우투리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구출한 뒤, 지리산 깊은 곳으로 신병들을 거느리고 들어가 영영 자취를 감추었지요. 백성들은 그 후로도 지리산에서 큰 바람이 불 때마다 우투리 장군이 하늘을 날며 자신들을 굽어보고 있다고 굳게 믿었더랍니다.
맺으며
부모의 지혜로운 눈물과 백성을 향한 아이의 기백이 지리산의 깊은 바위틈마다 서려 있으니, 권세를 부리던 악인은 결국 제 꾀에 넘어가 깊은 골짜기의 한 줌 흙이 되었더랍니다.
여러분도 험한 산길을 걷다 날개 달린 바람 소리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다음 이야기 예고: 한밤중 공동묘지에서 피리를 불며 시체를 부리는 기이한 백정의 사연이 펼쳐집니다.
※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 야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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