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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놈의 목을 당장 쳐라! 감히 나랏님께 바칠 진상품을 훔쳐 먹고도 발뺌을 하느냐!"
서릿발 같은 호통에 곤장을 맞던 사내의 피가 형틀 바닥을 붉게 적셨습니다. 까마귀가 포르르 날아오르자마자 과수원 가지에서 황금빛 배가 뚝 떨어져 박살이 났으니, 세상천지 이런 고약한 우연이 어디 있겠습니까.
탐욕스런 사또와 가난한 과수원지기

때는 조선 숙종 임금 시절, 경상도 상주목의 한 외딴 골짜기 마을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돌밭을 일구어 배 농사를 짓는 농부 '배달수'가 살고 있었지요. 달수는 천성이 우직하고 흙밖에 모르는 숙맥이었는데, 그에게는 아흔 노모의 약값을 마련하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었습니다.
그해 가을, 달수의 과수원에는 백 년에 한 번 열릴까 말까 한 신비로운 '금배' 세 닢이 주렁주렁 매달렸더랍니다. 껍질이 샛노랗고 달콤한 향이 십 리 밖까지 퍼져, 상주 목사 '조학현'의 귀에까지 들어갔지요.
조학현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기로 악명 높은 탐관오리였습니다.
"달수야, 저 배는 마땅히 대궐로 올려 보내 임금님께 진상해야 할 보물이니,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지키거라. 만에 하나 흠집이라도 나면 네놈 목숨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사또의 엄포에 달수는 밤낮으로 눈도 붙이지 못하고 과수원을 지켰습니다.
날아간 까마귀와 떨어진 황금 배

추수를 사흘 앞둔 어느 청명한 낮이었습니다. 달수가 잠시 짚신 끈을 고쳐 매려 허리를 숙인 찰나였지요.
푸드덕!
어디선가 날아온 검은 까마귀 한 마리가 금배가 달린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습니다.
툭! 퍽!
그 서슬에 가장 크고 탐스러운 금배 하나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달수는 사색이 되어 주저앉았고, 때마침 순시를 돌던 조학현과 포졸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아니, 저게 무슨 짓이냐! 감히 진상할 보물을 네놈이 탐내어 따려다 떨어뜨린 것이지?"
"아닙니다, 사또 나리! 맹세코 소인이 아닙니다! 저기 날아가는 까마귀 놈이 가지를 차고 날아오르자마자 배가 떨어진 것입니다요!"
달수가 눈물로 읍소했으나 조학현은 뱀처럼 차가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졌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핑계로구나! 진상품을 훼손한 대역죄인이니 당장 하옥하라!"
어둠 속에서 반짝인 증거

형틀에 묶여 모진 매를 맞은 달수는 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달수의 소꿉친구이자 인근 장터에서 봇짐장수를 하던 '칠복이'가 눈물을 흘리며 옥바라지를 왔지요.
"달수야, 사또 놈이 배값을 물어내라며 네 과수원 문서를 이미 제 배때지에 쑤셔 넣었다더구나. 다 짜고 친 판이야!"
"칠복아, 내 억울함은 저 하늘이 알 것이다. 허나 까마귀 탓을 한들 누가 믿어주겠느냐…."
칠복이는 분통이 터져 달수의 과수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깨진 배 조각이라도 살펴 단서를 찾으려던 칠복이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습니다. 깨진 배가 떨어진 자리 바로 위, 배나무 가지가 아니라 뒤편 대추나무 가지에 가느다란 명주실 한 가닥이 걸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부러진 배 꼭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부드러운 새 발에 채여 꺾인 게 아니라 날카로운 칼로 반쯤 베어낸 자국이 역력했습니다.
"옳거니, 까마귀는 그저 밥상 위에 올려진 미끼였구나!"
동헌 마당에 날아든 까마귀
이튿날, 조학현이 달수의 사형을 집행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장터에 암행을 나온 어사 '이몽주'가 마패를 차고 불쑥 동헌 문을 열어젖혔습니다.
"멈추어라! 억울한 죄인이 피를 흘리고 있거늘, 목사가 어찌 이리 서두르는가!"
조학현이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습니다.
"어, 어사또! 이놈은 진상품을 훔치려다 망쳐놓고는 까마귀 핑계를 대는 파렴치한 놈입니다!"
그때 칠복이가 관아 마당으로 뛰어들며 소리쳤습니다.
"나리, 이것을 보십시오! 배꼭지는 이미 사흘 전에 반쯤 잘려 있었고, 그 가지 뒤편에는 사또의 호방이 쓰는 낚싯줄용 명주실이 묶여 있었습니다!"
어사 이몽주가 서슬 퍼런 눈으로 명주실과 배꼭지를 넘겨받아 조학현의 코앞에 들이밀었습니다.
"까마귀가 칼을 품고 날아와 꼭지를 썰었단 말이냐? 대추나무 뒤에 숨어서 명주실을 당겨 배를 떨어뜨리고, 때마침 날아오른 까마귀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과수원을 집어삼키려 한 놈이 누구냐!"
"그, 그것이 아니오라…."
사또가 사시나무 떨듯 떨며 말을 잇지 못하자, 포졸들 틈에 갇혀 있던 호방이 덜컥 겁을 먹고 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사또 나으리가 시킨 짓입니다요! 달수의 과수원을 빼앗아 기생의 노리개로 주겠다고 저더러 실을 묶어 당기라 하셨습니다!"
악인의 파멸과 눈물의 모자
명백한 증거와 자백 앞에 조학현은 더 이상 발뺌할 수 없었습니다.
"네놈이 백성의 피땀을 갉아먹고, 무고한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 땅을 빼앗으려 했으니 죄질이 심히 무겁다!"
어사의 호통 한마디에 조학현의 관모가 벗겨지고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과수원 문서는 고스란히 달수의 품으로 돌아왔고, 달수는 옥문 밖에서 기다리던 병든 노모를 부둥켜안고 목놓아 울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뒤 사람들은 억울한 일이나 교묘한 흉계를 가리켜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말을 쓰게 되었다지요. 허나 달수의 배밭 위를 날던 그 까마귀는 도둑이 아니라, 더러운 탐욕을 세상에 까발려 준 기이한 길조였던 셈입니다.
맺으며
눈앞에 보이는 우연 뒤에 시커먼 흑심이 숨어 있을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남을 모함하여 제 배를 불리려던 자는 결국 제 꾀에 넘어가 파멸을 맞이하는 법이지요.
여러분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 기막힌 우연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쓸 뻔했던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다음 이야기 예고: 한밤중 정승 판서의 요강 속에 구렁이가 기어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 야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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