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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 칼바람이 살갗을 베어내던 깊은 밤, 꽁꽁 얼어붙은 남한강 한가운데에 한 젊은이가 엎드려 울부짖고 있었더랍니다.
도끼로 내리쳐도 하얀 흠집만 날 뿐 깨지지 않는 두꺼운 얼음판 위로, 소년의 피 묻은 손가락이 붉은 자국을 길게 남기고 있었지요.
기운 가문의 외아들과 병든 어머니

숙종 임금 시절, 충청도 충주목 달천 강가에는 박진우라는 가난한 서생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더랍니다.
진우는 성품이 유순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동네에서도 칭찬이 자자했으나, 가세가 몹시 기울어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지요.
그의 어머니는 해를 넘기기 힘들 만큼 모진 온역을 앓아 자리에 누웠는데, 숨이 턱에 닿아 가냘프게 읊조렸습니다.
"진우야… 내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은 오직 싱싱한 잉어 탕 한 그릇뿐이구나. 하지만 이 엄동에 어찌 그것을 구하겠느냐. 내 헛소리니 잊거라."
어머니의 야윈 뺨을 본 진우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여, 낡은 낚싯대와 작은 쇠손곳을 챙겨 곧장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탐욕스러운 백줏놈의 흉계

강가로 내달리던 진우는 마을의 소문난 고리대금업자이자 어물전 거상인 배만복과 마주쳤더랍니다.
배만복은 관아의 서리와 결탁해 백성들의 논밭을 빼앗는 악독한 자로, 진우의 선친이 남긴 작은 오두막 터마저 눈독을 들이고 있었지요.
"이 한밤중에 꼴값을 떨며 어딜 가느냐? 네놈 어머니가 오늘내일한다더니, 제사상 차릴 생선이라도 낚으러 가느냐?"
진우가 얼어붙은 손을 모아 쥐며 사정했습니다.
"배 영감님, 어머니께서 잉어를 찾으십니다. 댁의 어물전 얼음 창고에 저장해 둔 잉어라도 한 토막만 외상으로 주실 수 없겠습니까?"
배만복은 기름진 턱을 쓰다듬으며 비열하게 낄낄거렸더랍니다.
"내 창고의 잉어는 한양 대감 댁에 올릴 귀한 몸이다. 거저 줄 수는 없고, 내일까지 잉어를 못 구하면 네 놈의 집문서를 내놓겠느냐? 만약 네놈이 오늘 밤 저 꽁꽁 언 강에서 살아 있는 큰 잉어를 건져 오면, 내가 빚문서도 태우고 쌀 세 섬을 내주마!"
배만복은 삼척이나 얼어붙은 강에서 산 잉어를 낚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고, 진우의 집을 헐값에 가로채려 덫을 놓은 것이었지요.
피로 녹여낸 얼음 구멍

물러설 곳이 없던 진우는 얼음장 같은 달천 강 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더랍니다.
살을 에는 삭풍이 옷깃을 파고들었지만, 진우는 눈물을 훔치며 작은 쇠손곳으로 얼음판을 쪼기 시작했습니다.
깡, 깡, 쇳소리만 울려 퍼질 뿐 단단한 청빙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쇠손곳마저 뚝 부러져 차가운 눈 속에 파묻혔지요.
절망한 진우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맨가슴을 차가운 얼음판 위에 바싹 내리깔았더랍니다.
"하늘이시여, 어머니의 목숨을 살릴 수만 있다면 제 심장의 온기라도 다 바치겠습니다!"
얼음판 위에 엎드려 피눈물을 쏟으며 제 체온으로 얼음을 녹이려 들자, 진우의 가슴팍과 손끝에서 흘러내린 생피가 얼음 결을 따라 붉게 번져 나갔지요.
그때 기이하게도 붉은 피가 스며든 얼음 한가운데가 '쩌정!' 하는 굉음과 함께 둥글게 갈라지며 푸른 강물이 솟구쳤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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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에서 튀어 오른 붉은 비늘
진우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자, 솟구친 물줄기 속에서 팔뚝만 한 잉어 한 마리가 허공으로 펄떡 솟아올라 얼음판 위에 떨어졌습니다.
은빛이 도는 몸통에 붉은 점이 박힌 찬란한 잉어였는데, 신기하게도 그 잉어의 꼬리지느러미에는 진우가 어릴 적 잃어버렸던 은가락지 하나가 걸려 있었지요.
그 은가락지는 십 년 전, 진우의 아버지가 강물에 빠진 어린 진우를 구하고 목숨을 잃었을 때 강물 속에 가라앉았던 선친의 유품이었더랍니다.
진우는 가락지를 쥔 채 차가운 잉어를 품에 안고 감사의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이 불효자를 도우셨군요!"
진우는 얼어붙은 몸을 이끌고 곧장 집으로 달려가 잉어를 고아 어머니께 대접했고, 잉어 국물을 마신 어머니는 씻은 듯이 열이 내리고 눈을 떴더랍니다.
약속의 파기와 드러난 흉계
이튿날 아침, 진우가 산 잉어를 구해 어머니를 살렸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배만복은 집을 빼앗기는커녕 쌀 세 섬을 내주게 생기자, 하인들을 거느리고 진우의 집으로 들이닥쳤지요.
"이놈! 네놈이 요망한 술수로 사람들을 속였다! 어젯밤 내 창고의 자물쇠를 부수고 가장 귀한 잉어를 훔쳐 간 도둑이 바로 네놈이지!"
배만복은 제 창고에서 잉어가 사라졌다며 관아의 포졸들을 불러 진우를 결박하려 들었더랍니다.
진우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배만복에게 맞섰습니다.
"저는 결단코 도둑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젯밤 강바닥에서 아버님의 은가락지를 꼬리에 단 잉어를 건진 것입니다!"
배만복은 코웃음을 치며 진우의 멱살을 잡았습니다.
"거짓말 마라! 그 잉어는 며칠 전 내가 한양 대감께 바치려고 산 채로 얼음 창고 수조에 넣어 둔 것인데, 꼬리에 값비싼 은가락지를 채워 표시를 해 두었단 말이다!"
얼음 창고의 시체와 뒤바뀐 운명
그 순간, 관아의 사또와 포졸들이 배만복의 뒤를 쫓아 마당으로 들이닥쳤더랍니다.
사또의 서슬 퍼런 외침에 배만복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지요.
"배만복, 네놈이 제 입으로 그 은가락지 달린 잉어가 네 창고의 물건이라 자백했느냐!"
사또는 진우의 손에 들린 은가락지 안쪽에 새겨진 글귀를 군중 앞에 높이 들어 보였습니다.
"이 은가락지 안쪽에는 '박문수'라는 진우 선친의 이름이 선명히 새겨져 있다. 그런데 배만복 네놈의 얼음 창고 바닥에서 십 년 전 실종되었던 박문수의 유골과, 그를 찔러 죽인 피 묻은 비수 한 자루가 오늘 아침 얼음이 녹으며 발견되었다!"
십 년 전, 배만복은 나루터 이권을 독점하려 진우의 부친을 강가에서 살해하여 얼음 창고 깊은 바닥에 묻어 은폐했던 것이었지요.
강에서 솟아난 잉어는 진우의 부친이 억울함을 풀고 효자를 돕고자 넋으로 변해 보낸 신령한 섭리였던 셈입니다.
제 꾀에 스스로 걸려들어 살인을 자백한 꼴이 된 배만복은 그 자리에서 오라를 받고 하옥되어 사형을 언도받았더랍니다.
맺으며
배만복의 전 재산은 몰수되어 진우 모자처럼 억울하게 땅을 빼앗겼던 백성들에게 고루 돌아갔고, 진우는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며 오래도록 평안을 누렸지요.
지극한 정성은 얼어붙은 강물뿐만 아니라 천지신명의 마음마저 녹여 숨겨진 원한까지 풀어내는 법이랍니다.
혹여 여러분도 눈 덮인 겨울 강을 지나다 문득 발아래에서 붉은 비늘을 번뜩이며 솟구치는 신비로운 잉어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다음 이야기 예고: 보름달 뜨는 밤마다 우물가에서 머리를 빗던 소복 입은 여인의 정체.
※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 야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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