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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폐가에 숨어든 가난한 선비와 은비녀를 품은 천년 묵은 여우의 최후

▶ 영상으로 먼저 만나 보세요달빛조차 푸르스름하게 얼어붙은 야심한 밤이었습니다. 인적 끊긴 산골짝 한구석, 잡초가 무성한 폐가 안으로 피비린내 섞인 찬 바람이 훅 끼쳐 들었지요.흙먼지가 자욱한 마루에 주저앉아 헐떡이던 젊은 선비는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히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보고 그만 숨을 턱 멈추고 말았더랍니다.추풍령 고갯길의 비바람때는 조선 인조 임금 시절, 충청도 영동 땅 추풍령 자락이었지요.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남양 홍씨 집안의 몰락한 유생 홍도령, 홍기석은 성품이 곧고 우직하여 남의 것을 탐할 줄 모르는 선비였습니다. 허나 손에 쥔 노자라고는 엽전 닷 냥과 어머니가 장가가거든 며느리에게 건네라며 쥐여 준 낡은 '벽조목(벼락 맞은 대추나무) 은비녀' 하나뿐이었지요.날이 저물자 별안간 하늘이 ..

기담·괴담 13:34:42

서대문 밖 빗속에서 곡하던 처녀 귀신과 비단 장수가 품고 달아난 붉은 주머니

▶ 영상으로 먼저 만나 보세요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 사이로 묘한 곡소리가 도성 서쪽을 흔들었더랍니다. 눅눅한 흙먼지가 피비린내와 뒤섞여 올라오던 영조 28년 유월의 그믐밤, 굳게 닫힌 돈의문 밖 돌담 아래에는 젖은 소복을 입은 여인의 그림자가 어김없이 어른거렸지요.그 길목을 지나는 길손마다 헛것을 보았다며 사지가 뒤틀려 쓰러지기 일쑤였는데, 귀신을 마주한 자들의 입에선 한결같이 "붉은 댕기를 쥔 손이 목을 조른다"는 비명만 터져 나왔습니다.서대문 밖 주막의 수상한 손님들한양포도청의 참모포교 배도현은 무뚝뚝하지만 억울한 사정을 보면 제 밥상도 엎고 나서는 대쪽 같은 성품이었지요.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도성 백성들이 억울한 누명 없이 다리 뻗고 자는 평온한 세상뿐이었습니다. 빗줄기가 처마를 뚫을 ..

기담·괴담 13:23:16

호랑이 덫에 제 발로 걸려든 나그네가 하룻밤 새 목숨을 건진 곡절

▶ 영상으로 먼저 만나 보세요달그락, 덜컥!"시퍼런 쇠날이 맞부딪치며 뼈를 으스러뜨리는 소리가 칠흑 같은 어둠을 찢어발겼습니다. 비명이 터져 나올 법도 하건만, 깊은 산중에 갇힌 사내는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삼켰더랍니다.사내의 다리를 억센 이빨처럼 물고 늘어진 것은 짐승의 뼈마디도 단숨에 끊어낸다는 맹호박(猛虎縛), 즉 쇠로 만든 대형 호랑이 덫이었습니다.눈먼 길 위의 몰락 양반때는 숙종 대, 강원도 삼척 땅의 깊고 험한 쉰움산 자락이었습니다. 덫에 걸려 피를 흘리는 사내는 한양에 살던 몰락 양반 한진우였지요.본래 심성이 우직하고 남을 속일 줄 모르는 진우는 노모의 약값을 구하려 삼척의 먼 친척에게 돈을 빌리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해가 서산 너머로 뚝 떨어지고 진눈깨비까지 흩날리자, 그만 호랑이가..

조선야담 13:1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