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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점쟁이의 쌈짓돈을 빼앗은 뱃사공, 사흘 뒤 장터 점괘 앞에서 무릎 꿇은 까닭

지은미소 2026. 10. 1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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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임금 때, 전라도 어느 강가 나루터에 짙은 안개가 내려앉은 새벽이었더랍니다.

지팡이를 짚은 눈먼 점쟁이 박 봉사가 나룻배에 올랐습니다. 품에는 삼십 년 동안 점을 봐 주며 한 푼 두 푼 모은 엽전 서른 냥이 든 쌈지가 있었지요. 다음 달 시집가는 외동딸 혼수에 쓸 돈이었습니다.

강 한가운데에서 생긴 일

배가 강 한가운데에 이르자 뱃사공 강쇠가 노를 멈췄습니다.

"영감, 그 품에 든 게 뭐요? 짤랑짤랑 소리가 요란하구려."

"딸아이 혼숫감 살 돈이오. 어서 건네주시구려."

강쇠는 대답 대신 박 봉사의 품에서 쌈지를 낚아챘습니다. 박 봉사가 그 손목을 붙잡는 순간, 손가락 끝에 차가운 쇠가락지가 걸렸지요. 그리고 손등에 굵은 흉터 자국이 만져졌습니다.

"이놈! 하늘이 다 보고 있다!"

"하늘이 보든 말든, 눈먼 영감이 무엇을 보겠소?"

강쇠는 박 봉사를 강 건너 모래톱에 떠밀어 내려놓고는 안개 속으로 노를 저어 사라졌습니다.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 고발

박 봉사는 그길로 관아에 찾아가 엎드렸습니다.

"사또, 나룻배 사공이 제 돈 서른 냥을 빼앗았습니다."

사또는 혀를 찼습니다.

"본 사람도 없고, 너는 앞을 못 보니 그 사공 얼굴도 모르지 않느냐. 증좌 없이 어찌 사람을 잡겠느냐."

나루에는 사공이 열 명도 넘었습니다. 박 봉사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럼 사또, 사흘만 장터 한복판에 제 점방을 내게 해 주십시오. 그 사공을 제 발로 걸어오게 하겠습니다."

사또는 반신반의하면서도 허락했습니다. 그날부터 장터에는 이런 소문이 돌았습니다.

"눈먼 박 봉사가 공짜로 재물 점을 봐 준다더라. 새로 생긴 돈이 복이 될지 화가 될지 귀신같이 맞힌다지."

공짜 재물 점

사흘째 되던 날, 비린내를 풍기는 사내 하나가 점방 앞에 털썩 앉았습니다.

"영감, 내가 요새 뜻밖의 돈이 좀 생겼는데, 이게 복이 될지 화가 될지 봐 주시오."

박 봉사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손끝이 떨렸지만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돈의 점은 돈을 만져 봐야 나오는 법이오. 그 엽전을 이 상 위에 올려 보시오."

사내가 엽전 한 움큼을 내려놓았습니다. 박 봉사는 엽전을 하나하나 손끝으로 쓸어 보더니, 이번에는 사내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손가락에 쇠가락지, 손등에 굵은 흉터.

박 봉사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점괘가 나왔소! 이 돈은 남의 딸 혼숫돈이라, 쥔 자에게 큰 화가 미치겠소!"

엽전에 새겨 둔 표시

그때 장꾼 틈에 섞여 있던 사또가 포졸들과 함께 앞으로 나섰습니다.

"네 이놈, 그 돈이 네 돈이라면 어디서 났는지 말해 보거라."

"제, 제가 품을 팔아 번 돈입니다요!"

박 봉사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사또, 저는 앞을 못 보니 엽전을 셀 때 헷갈리지 않으려고 제 돈마다 가장자리에 작은 홈을 하나씩 파 두었습니다. 그 엽전들을 살펴보십시오."

사또가 엽전을 하나하나 집어 보니, 하나같이 가장자리에 손톱만 한 홈이 똑같이 파여 있었습니다.

강쇠는 그 자리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랄 일은 그다음이었습니다. 박 봉사가 딸의 혼처를 말하자 강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요.

"건넛마을 강가네 아들… 그 집이 바로 제 집입니다요."

박 봉사가 빼앗긴 혼숫돈은, 바로 강쇠의 며느리가 될 아이의 혼숫돈이었던 것입니다.

맺으며

강쇠는 서른 냥을 고스란히 돌려주고 곤장을 맞은 뒤, 박 봉사 앞에 엎드려 빌었습니다.

"사돈어른, 이 못난 놈을 용서해 주십시오."

박 봉사는 한참 말이 없다가 강쇠의 흉터 난 손을 가만히 잡았습니다.

"남의 눈을 속인 손이 제 집 앞날을 털 뻔했구려. 이 손으로 이제 정직하게 노를 저으시오."

한 달 뒤 혼례는 무사히 치러졌고, 그 나루에서는 눈먼 손님에게 뱃삯을 받지 않는 사공이 하나 생겼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앞을 못 본다고 남을 얕잡아 보다 낭패를 본 이야기를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다음 이야기 예고: 혼례 날 신부가 관아로 달려가 새신랑의 뺨을 때린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 야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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