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치는 언 강에서 잉어를 건진 효자가 옥살이 대신 금두꺼비를 받은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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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던 밤, 강원도 영월의 동강 한복판에서 찢어지는 듯한 곡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두께가 넉 자는 족히 되는 시퍼런 얼음판 위에 피투성이가 된 맨발의 사내가 엎드려 울고 있었지요. 사내의 손에는 살아서 펄떡이는 황금빛 잉어 한 마리가 쥐여 있었습니다.
얼음장 밑에서 솟구친 황금 잉어

조선 숙종 임금 때, 영월 땅 깊은 골짜기에는 한만호라는 젊은 나무꾼이 살았더랍니다. 만호는 천성이 순박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마을에서 효자로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허나 가세가 곤궁한 데다, 홀어머니가 몇 달째 원인 모를 중병에 걸려 자리에 눕고 말았지요.
어느 날 늙은 의원이 만호의 집을 찾아 혀를 끌끌 차며 말했습니다.
"자네 모친의 화병과 각기병은 오직 한겨울 산 잉어를 고아 먹여야 낫겠네. 허나 이 맹추위에 강이 통째로 얼어붙었으니 하늘이 돕지 않고서야 어찌 산 잉어를 구하겠는가."
의원의 말에 만호는 앞뒤 잴 것 없이 얼어붙은 강으로 내달렸더랍니다.
도끼도 괭이도 튕겨 나가는 단단한 얼음판 위에서, 만호는 저고리를 벗어 제치고 맨가슴으로 얼음을 품었습니다.
"하늘이시여, 제 목숨을 거두시고 제발 눈 먼 잉어 한 마리만 점지해 주십시오!"
피눈물이 얼음 위로 뚝뚝 떨어져 닿자, 기적처럼 쩍 하는 굉음과 함께 얼음장 한가운데가 둥그렇게 갈라졌습니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어른 팔뚝만 한 잉어 한 마리가 허공으로 솟구쳐 만호의 품에 안겼지요.
욕심쟁이 지주의 비열한 덫

만호가 잉어를 가슴에 품고 마을로 달려가던 길목에, 그 고을의 악명 높은 지주 배천석이 하인들을 거느리고 버티고 섰더랍니다. 배천석은 고리대로 백성들의 전답을 빼앗아 부를 축적한 탐욕스러운 자였지요. 게다가 그는 사또의 환심을 사서 향청의 좌수 자리를 꿰차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배천석은 만호의 품에서 퍼덕이는 잉어를 보더니 눈을 번뜩였습니다.
"그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나온 잉어라니! 내 내일 사또 생신 잔치에 바칠 귀한 진상품이 마침 마땅찮았는데, 그것을 내게 넘겨라. 은전 세 닢을 주마."
만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품을 파고들었습니다.
"배 나리, 이 잉어는 사경을 헤매는 제 어머니의 약입니다. 천금을 주신다 해도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배천석은 코웃음을 치며 잉어를 강제로 빼앗으려 들었습니다. 만호가 완강히 저항하자, 배천석은 만호의 옷소매를 쥐어뜯으며 품속에 몰래 묵직한 물건 하나를 찔러 넣었지요.
"네놈이 감히 양반의 뜻을 거역해? 이 도둑놈을 당장 결박하여 관아로 끌고 가거라!"
하인들은 순식간에 만호를 두들겨 패고 잉어를 빼앗은 뒤, 포승줄로 꽁꽁 묶어 관아로 끌고 갔습니다.
사또의 호통과 감춰진 밀실
영월 관아 동헌에 끌려간 만호는 영문도 모른 채 멍석에 말려 곤장을 맞을 처지에 놓였습니다. 배천석은 사또 김익령 앞에서 뻔뻔스럽게 거짓을 고했더랍니다.
"사또 나리! 이 천한 나무꾼 놈이 제 집 담을 넘어 안방의 가보를 훔쳐 달아나다 잡혔습니다. 놈의 품을 뒤져보시면 증좌가 나올 것입니다!"
사또가 형방에게 명하여 만호의 피투성이 옷을 뒤지게 하자, 과연 품 안에서 번쩍이는 순금 비녀 한 쌍이 툭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배천석이 몸싸움 도중 만호의 찢어진 옷자락 속에 몰래 찔러 넣은 것이었지요.
만호는 억울함에 땅을 치며 오열했습니다.
"사또 나리, 결단코 도둑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얼음 강에서 어머니를 살릴 잉어를 건졌는데 배 나리가 빼앗으려 누명을 씌운 것입니다!"
사또 김익령은 매서운 눈빛으로 금비녀와 만호의 상처투성이 맨발을 번갈아 살폈습니다. 만호의 발가락은 온통 동상에 걸려 검붉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고, 가슴팍에는 얼음에 덴 시퍼런 멍 자국이 가득했지요.
사또는 냉정하게 명을 내렸습니다.
"도벽이 있는 자가 제 발을 얼려가며 강물에 뛰어들 까닭이 없다. 허나 명백한 증좌가 나왔으니 법대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저놈을 하옥하고, 배천석 너는 그 잉어를 들고 내 동헌 뒤 밀실로 따라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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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안에서 밝혀진 잉어의 배
배천석은 사또가 잉어를 진상받으려 밀실로 부른 줄 알고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밀실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밀실 안에는 은밀한 취조에 쓰이는 각종 도구와 함께 사또가 홀로 앉아 있었지요.
"배천석, 네가 이 잉어를 진상품으로 바치겠다 하였느냐?"
"예, 사또 나리! 얼음 강에서 얻은 영물이라 하니 사또의 수명을 늘려줄 명약이 될 것입니다."
사또는 서안에 놓인 회칼을 집어 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잉어의 배를 푹 갈랐습니다. 배천석이 놀라 눈을 크게 뜨는 순간, 잉어의 내장 속에서 붉은 실로 꿰맨 비단 주머니 하나가 툭 튀어나왔더랍니다.
주머니가 터지며 방바닥으로 굴러떨어진 것은 다름 아닌 묵직한 순금 두꺼비 한 쌍이었습니다. 그 금두꺼비의 밑바닥에는 똑똑히 '배(裵)' 자가 음각되어 있었지요.
사또의 서슬 퍼런 목소리가 밀실을 짓눌렀습니다.
"배천석, 이것이 무엇이냐? 네놈이 삼 년 전 관곡을 빼돌려 주조했다가 관청의 감찰이 들이닥치자 동강 깊은 소에 내던져 숨겼다던 그 장물 금두꺼비가 아니더냐!"
배천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사, 사또 나리! 그것이 어찌 그 물고기 뱃속에서…"
사실 만호가 얼음을 깰 때 품었던 지극한 정성에, 강바닥 깊은 뻘 속에 가라앉아 있던 금두꺼비를 삼키고 숨을 헐떡이던 잉어가 마침 얼음 구멍으로 튀어 올랐던 것이었지요. 금두꺼비에 새겨진 글자와 관곡 횡령의 비밀을 이미 알고 있던 사또는 밀실로 배천석을 유인해 꼼짝 못 할 증거를 들이민 것이었습니다.
금두꺼비가 부른 종말
사또는 밀실 문을 박차고 나가 포졸들을 불렀습니다.
"향청 좌수를 탐내며 관곡을 횡령하고, 무고한 효자에게 도둑 누명을 씌워 잉어까지 빼앗으려 한 흉악한 죄인 배천석을 당장 하옥하라!"
배천석은 비명을 지르며 곤장 백 대를 맞고 북쪽 변방의 노비로 압송되었으며, 그의 모든 가산은 몰수되었습니다.
한편, 억울하게 갇혔던 만호는 옥에서 풀려나 사또 앞에 섰습니다. 사또는 배천석의 집에서 몰수한 쌀 스무 섬과 함께, 잉어 뱃속에서 나온 금두꺼비 한 짝을 포상으로 내렸더랍니다.
"하늘이 너의 효심에 감복하여 네 어미를 살릴 잉어를 내렸고, 네 억울함을 풀고 탐관오리를 징벌할 금두꺼비까지 함께 물려 보낸 것이다. 효자의 눈물은 거짓을 이기는 법이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 어미를 봉양하라."
만호는 사또가 내준 좋은 약재와 잉어를 정성껏 다려 어머니께 올렸고, 어머니는 며칠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만호는 남은 금두꺼비를 팔아 마을의 가난한 이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며 평생 효도하고 베풀며 행복하게 살았더랍니다.
맺으며
사람의 눈을 속여 남을 함정에 빠뜨리는 자는 언젠가 하늘이 놓은 더 큰 덫에 걸려 제 꾀에 스스로 넘어가는 법입니다. 꽁꽁 얼어붙은 강물도 녹여 낸 효자의 뜨거운 눈물이야말로 하늘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 아니겠습니까. 혹시 여러분도 한겨울 절망 속에서 뜻밖의 기적을 만났다는 옛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다음 이야기 예고: 보름달 뜨는 밤마다 주막 뒷마당 우물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방앗소리, 그 물 밑에 가라앉은 놋그릇의 비밀이 벗겨집니다.
※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 야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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