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약초꾼의 누렁이가 한밤마다 엽전을 물고 서당 훈장의 뒤뜰로 달려간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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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삼경(三更), 충청도 음성현의 낡은 초가집 문밖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멍, 멍!"
나직한 울음소리에 문을 열어젖힌 사내는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누렁이 녀석의 주둥이에서 툭 떨어진 것은 흙투성이가 된 엽전 세 닢이었습니다.
피투성이 누렁이와 약초꾼

때는 숙종 대의 일이었더랍니다. 음성현 깊은 골짜기 밑마을에는 박태석이라는 젊은 약초꾼이 홀로 병든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습니다.
천성이 우직하고 착하여 남에게 모진 말 한마디 못 하던 태석은 산에서 캔 약초를 장터에 내다 팔아 겨우 입에 풀칠을 했지요.
그의 소원은 오직 노모의 오랜 기침병을 고칠 비싼 약재를 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 태석에게 어느 비바람 치던 날 밤, 피투성이가 된 누렁이 한 마리가 기어들어 왔습니다.
다리를 다쳐 사경을 헤매던 녀석을 태석은 아끼던 지혈초를 찧어 붙여 주고 귀한 쌀죽을 쑤어 먹이며 정성껏 살려냈지요.
녀석은 온몸이 황구였으나 왼쪽 귀 끝만 먹물에 찍힌 듯 까만 점이 있어 태석은 녀석을 '누렁이'라 부르며 친자식처럼 아꼈습니다.
한밤의 엽전과 훈장의 독촉

그런데 노모의 병세가 깊어져 당장 은화 몇 냥이 급해진 그해 겨울,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누렁이가 사흘이 멀다 하고 자정이 넘은 시각에 엽전 서너 닢, 많게는 대여섯 닢씩 물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놈아, 이 돈을 대체 어디서 훔쳐 온 게냐? 남의 것을 탐하면 천벌을 받는다."
태석이 꾸짖으며 엽전을 빼앗으려 해도 녀석은 꼬리를 흔들며 엽전을 그의 발치에 밀어둘 뿐이었습니다.
동전에는 늘 축축한 진흙과 함께 알 수 없는 향 냄새, 그리고 유난히 붉은 주사(朱砂) 가루가 묻어 있었지요.
한편, 마을 서당의 훈장 배천수는 겉으로는 유학자연 행세했으나 실은 마을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고리대금업자였습니다.
태석의 모친이 진 빚 닷 냥을 핑계로 태석의 오두막과 마지막 남은 밭뙈기를 빼앗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지요.
"이놈 태석아! 보름 안에 닷 냥을 다 갚지 못하면 네놈 집문서를 관아에 넘길 터이니 그리 알아라!"
배 훈장은 주막 앞마당에서 태석의 멱살을 잡고 삿대질을 해댔습니다.
붉은 흙과 서당 뒤뜰의 비밀

기한을 하루 앞둔 밤, 누렁이가 또다시 엽전 열 닢을 물고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이번에는 녀석의 발바닥에 붉은 황토가 엉겨 붙어 있었고, 입가에는 피비린내가 은은하게 감돌았지요.
불길한 예감이 든 태석은 돈을 챙겨두고 살금살금 밖으로 나가는 누렁이의 뒤를 밟았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가로지른 누렁이가 멈춰 선 곳은 뜻밖에도 마을 어귀 배 훈장의 서당 뒤뜰 사당 앞이었습니다.
누렁이는 사당 옆 커다란 향나무 밑동을 앞발로 미친 듯이 파헤치기 시작했더랍니다.
"누렁아, 멈춰라! 남의 사당 뜰에서 무슨 짓이냐!"
태석이 쫓아가 말리려는 찰나, 어둠 속에서 몽둥이를 든 배 훈장과 그의 머슴들이 나타났습니다.
"도둑놈 잡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네놈이 그동안 개를 시켜 내 금괴와 돈을 훔쳐 가게 한 것이로구나!"
배 훈장은 서슬 퍼런 얼굴로 태석을 포박하고 관아로 끌고 갔습니다.
관아의 추국과 땅속의 궤짝
음성현 관아의 동헌 마당, 고을 사또 앞에 태석은 결박당한 채 무릎을 꿇었습니다.
"사또 나리! 이 흉악한 약초꾼 놈이 짐승을 훈련해 소인의 뒤뜰 비밀 장독에서 돈을 빼돌렸습니다! 당장 엄벌에 처해 주십시오!"
배 훈장이 소리 높여 고변하자, 태석은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며 읍소했지요.
"사또, 맹세코 소인은 도둑질을 사주한 적이 없습니다. 개가 물어온 돈은 노모의 약값으로 쓰지도 않고 방구석에 모아두었을 뿐입니다!"
그때 관아 문을 뚫고 누렁이가 난입하여 배 훈장의 바짓가랑이를 물어뜯더니, 사또의 책상 앞에 붉은 헝겊 조각 하나를 뱉어냈습니다.
그 헝겊은 서당 훈장의 관복 안감이었고, 거기에는 핏자국과 함께 훈장의 호가 또렷이 수놓아져 있었지요.
사또가 의아하게 여겨 명했습니다.
"사당 뒤뜰을 샅샅이 파헤쳐 그 안에서 무엇이 나오는지 확인하라!"
포졸들이 들이닥쳐 향나무 밑을 세 길이나 파 내려가자, 엽전 몇 닢이 아니라 묵직한 쇠사슬로 묶인 커다란 궤짝 하나가 덜컥 걸려 나왔습니다.
드러난 핏빛 죄악
궤짝 뚜껑을 부수고 연 순간, 포졸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 안에는 은화 수백 냥과 함께, 썩어 문드러진 사내의 시신 한 구가 웅크린 채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신의 목에는 날카로운 칼자국이 나 있었고, 손에는 주사로 쓴 혈서 한 장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삼 년 전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던 전임 훈장 윤 진사의 유서이자 시신이었지요.
"배천수 이놈, 이것이 대체 어찌 된 일이냐!"
사또의 호통에 배 훈장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실은 삼 년 전, 배천수가 훈장 자리를 차지하고 윤 진사의 막대한 가산을 빼앗기 위해 그를 살해한 후 사당 뒤뜰에 암매장했던 것입니다.
그는 시신이 든 궤짝 위에 훔친 엽전 궤를 함께 묻어두고 붉은 주사 부적을 발라 원혼을 눌러두고 있었지요.
그리고 놀랍게도, 그 당시 주인이 난도질당할 때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서 싸우다 간신히 도망쳤던 윤 진사의 애견이 바로 이 누렁이였습니다.
귀 끝의 먹물 점은 윤 진사가 살아생전 녀석을 아껴 직접 찍어준 표식이었던 것입니다.
누렁이는 목숨을 구해준 태석에게 은혜를 갚음과 동시에, 밤마다 옛 주인의 유골 위를 파헤쳐 그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고자 엽전을 물어 날랐던 것이지요.
맺으며
배천수는 그 자리에서 포박되어 한양 의금부로 압송된 뒤 참형을 면치 못하였고, 그의 부정 축재한 재산은 몰수되었습니다.
사또는 주인의 원수를 갚고 새 주인의 효행을 도운 충견 누렁이와 박태석에게 후한 상금을 내렸지요.
태석은 그 돈으로 모친의 오랜 병환을 깨끗이 고치고, 누렁이와 함께 오래도록 평안을 누렸더랍니다.
말 못 하는 짐승이라 하여 그 충심과 지혜를 어찌 사람보다 못하다 하겠습니까.
혹 여러분의 고장에도 주인의 원수를 갚거나 은혜를 잊지 않은 충견의 옛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지요?
다음 이야기 예고: 보름달 뜨는 밤마다 우물 속에서 들려오는 가야금 소리와 사라진 별감의 딸.
※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 야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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