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풍자

대동강 푸른 물에 엽전을 던진 사내와 한양 판서댁 조카의 눈물

지은미소 2026. 10. 18.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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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강물 한 바가지 길어 가는 데 엽전 한 닢씩 똑똑히 내놓으시오!”

평양성 만경대 앞나루에서 난데없는 고함이 터져 나오자, 물동이를 인 아낙들과 물지게꾼들이 줄을 지어 엽전을 짤랑거리며 바쳤습니다. 천하에 흐르는 강물을 두고 돈을 내라니, 대관절 이게 어찌 된 영문이었을까요?

강가에 나타난 기이한 사내

조선 순조 임금 시절, 평양 땅에는 온갖 꾀와 입담으로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김선달이라는 몰락 양반이 살고 있었습니다. 닭을 봉황이라 속여 팔았다 하여 ‘봉이’라는 별칭이 붙은 그는, 가난한 백성을 등쳐먹는 탐관오리와 부패한 한양 양반들을 골탕 먹이는 재미로 살았지요.

그 무렵 한양에서는 세도판서의 조카인 민판관이란 자가 내려와 있었습니다. 본래 성품이 교활하고 재물 욕심이 끝이 없던 민판관은, 평양 감사와의 연줄을 믿고 관서 지방의 비옥한 전답과 인삼포를 닥치는 대로 헐값에 사들이던 악명 높은 수전노였더랍니다.

하루는 민판관이 기생들을 끼고 만경대 누각에 올라 뱃놀이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가에서 기이한 광경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흰 도포를 입은 김선달이 강둑에 의자를 놓고 앉아 거들먹거리는데, 물을 길러 온 백성들이 일제히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엽전을 한 닢씩 내미는 것이었지요.

흐르는 물을 파는 비결

이를 본 민판관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하인을 보내 김선달을 누각 위로 불러올렸습니다. 탐욕에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민판관이 따져 물었지요.

“여봐라, 저 강물이 뉘 것이관대 네놈이 돈을 받는단 말이냐?”

김선달은 짐짓 당황한 척 도포 자락을 여미며 공손히 허리를 숙였습니다.

“나리, 모르는 말씀 마십시오. 저 대동강 물줄기는 본래 제 고조부 때부터 조정에서 사패지로 하사받은 저희 가문의 사유지이옵니다. 평양 백성들이 제 허락 없이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지요.”

민판관은 기가 막히면서도 입안에 침이 고였습니다.

“허허, 저 마르지 않는 강물이 네 놈 땅이라고? 그렇다면 하루에 들어오는 돈이 얼마나 되느냐?”

김선달이 헛기침을 세 번 하더니 손가락을 꼽아 보였습니다.

“성안의 수천 가구가 날마다 밥 짓고 빨래를 하니, 하루에 적어도 수십 냥은 거저 들어옵니다. 그저 강가에 앉아 동전 자루를 받기만 하면 되니, 천하에 이보다 편한 장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탐욕에 눈먼 거간꾼

눈이 뒤집힌 민판관은 이 기막힌 노다지를 가만히 둘 수 없었습니다.

“이보게, 김선달이라 했는가? 내가 후하게 쳐줄 터이니 그 대동강 물을 내게 팔게나!”

김선달은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이고, 나리!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문중의 밥줄을 어찌 남에게 넘기겠습니까? 천만금을 주셔도 그것만은 절대 불가하옵니다!”

김선달이 완강하게 버티자 민판관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습니다. 남에게 빼앗길세라 안달이 난 민판관은 주막으로 선달을 데려가 기름진 고기와 독한 평양 감홍로를 연거푸 권하며 사정하기 시작했지요.

“내 판서 대감의 조카요! 관아에 힘을 써서 자네 문중에 큰 벼슬자리라도 하나 내려줄 테니, 제발 넘기게. 은화 사천 냥을 일시에 주겠네!”

선달은 술기운에 못 이기는 척, 마지못해 한숨을 내쉬며 품속에서 누렇게 바랜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정 그러하시다면… 대신 관아의 공증을 서고, 선대부군께서 남기신 이 문기에 붉은 인장을 확실히 찍으셔야 합니다. 후일 딴소리를 하시면 곤란합니다.”

그 종이는 김선달이 어젯밤 낡은 한지에 콩기름을 먹여 만든 가짜 사패교지였습니다. 욕심에 눈이 먼 민판관은 글귀를 꼼꼼히 살필 겨를도 없이 냉큼 도장을 찍고 사천 냥 어음과 은화를 털어 건넸습니다.

만경대 아래의 날벼락

이튿날 새벽, 민판관은 비단 도포를 떨쳐입고 하인 수십 명을 거느린 채 득의양양하게 만경대 나루터로 나갔습니다.

“오늘부터 이 대동강 물은 한양 판서댁 민 대감의 소유다! 물을 긷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 내게 은 반 푼씩 바쳐라!”

하지만 나루터에 모여든 백성들은 돈을 내기는커녕 멍하니 서서 그를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물지게를 진 털보 장정이 참다못해 버럭 소리를 질렀지요.

“아니, 웬 미친 양반이 아침부터 헛소리요? 강물을 왜 돈 주고 사 마신단 말이오?”

민판관이 핏대를 세우며 하인들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어제 김선달에게 엽전을 바치던 것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어서 저놈들의 멱살을 잡고 돈을 털어내라!”

그때 털보 장정이 껄껄 웃으며 허리춤에서 엽전 석 닢을 꺼내 보였습니다.

“아이고, 나리! 어제 김선달 나리가 찾아와 엽전을 두 냥씩 쥐여주며 ‘내일 새벽에 나루터에서 물을 길어 갈 때 내게 엽전 한 닢씩 도로 건네주면 나머지 돈은 너희가 다 가져도 좋다’고 삯을 주었단 말이오! 우리가 미쳤다고 생돈을 내고 강물을 길어 먹겠소?”

그 말에 민판관의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김선달이 제 돈을 미리 풀어놓고 강물을 파는 척 연극을 벌인 것이었지요.

맺으며

사천 냥이라는 거금을 사기당한 민판관은 관아로 달려가 길길이 뛰었으나, 제 손으로 ‘대동강 물을 영구히 사들인다’고 도장을 찍은 문기 탓에 평양 감사조차 혀를 끌끌 찰 뿐이었습니다. 결국 한양 양반은 전 재산을 날리고 평양 백성들의 비웃음을 사며 야반도주를 하였고, 김선달은 챙긴 은화를 가난한 평양의 빈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며 유유히 대동강을 건넜더랍니다.

흐르는 강물에 주인이 없듯, 끝없는 탐욕으로 채우려는 재물 또한 덧없는 물거품에 불과한 법이지요. 여러분의 고장에도 이처럼 기막힌 꾀로 욕심 많은 권세가를 골탕 먹인 호쾌한 이야기꾼이 전해 내려오는지요?

다음 이야기 예고: 밤마다 무덤에서 솟아나 정승의 밥상에 오르던 기괴한 은수저의 비밀

※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 야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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