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야담

정승의 낡은 짚신 한 켤레가 탐욕스러운 거상의 곳간을 열어젖힌 사연

지은미소 2026. 10. 1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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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이 휩쓸고 간 삼남의 길목에는 풀뿌리마저 마르고 사람 뼈가 뒹굴었더랍니다. 흙탕물로 배를 채우던 백성들의 목구멍을 태우는 것은 굶주림만이 아니었으니, 다름 아닌 한 줌의 소금이 없어서 온몸이 퉁퉁 붓고 썩어 들어가는 생지옥이었지요.

그런 생지옥 한가운데로, 정일품 영의정의 벼슬을 지낸 서애 유성룡 대감이 흙먼지투성이 누더기를 걸치고 홀로 나귀도 없이 터덜터덜 걸어 들어왔더랍니다.

마른논에 소금 비를 기다리듯

선조 27년의 봄, 경상도 안동 길목의 풍산포는 소금 한 되가 쌀 열 말과 맞먹을 만큼 귀한 몸이 되어 있었지요. 소금을 쥐고 흔드는 자는 포구의 거상인 배만득이라는 장사치였는데, 왜적이 물러가자마자 남해안의 염전을 헐값에 사들여 폭리를 취하던 악질이었더랍니다.

"내 창고의 하얀 소금은 곧 은덩이다! 은 한 닢 없는 놈들은 게거품을 물든 혓바닥이 썩든 썩 꺼져라!"

배만득은 굶주려 쓰러진 백성들이 곳간 문을 두드릴 때마다 몽둥이질로 쫓아냈지요. 백성들은 짠맛을 보지 못해 잇몸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갔고, 아이들은 누렇게 뜬 얼굴로 흙을 파먹고 있었더랍니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삼남의 구휼을 살피러 내려온 유성룡 대감의 가슴은 숯검정처럼 타들어 갔지요. 어떻게든 저 굳게 닫힌 배만득의 염창(鹽倉)을 열어야만 수만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절체절명의 형편이었더랍니다.

체면을 벗어던진 늙은 재상

유 대감은 관아로 가지 않고 배만득의 기와집 문간으로 곧장 찾아갔더랍니다. 비단 옷을 입고 거들먹거리던 배만득은 짚신 코가 다 터지고 도포 자락에 흙이 묻은 늙은이를 아래위로 훑어보았지요.

"허름한 서생 노인네 같은데, 여긴 시루떡 얻어먹으러 오는 서당이 아니오. 썩 물러가시오!"

유 대감은 노여워하기는커녕 허리를 깊숙이 굽히며 두 손을 모았더랍니다.

"듣자 하니 배 행수께서는 천하의 재물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다 들었소. 내 비록 가난하나 그대에게 아주 진귀한 물건을 바치고 소금 몇 가마를 청할까 하오."

"진귀한 물건? 거렁뱅이 주제에 무슨 보물이 있다고!"

배만득이 코웃음을 치자, 유 대감은 품속에서 낡고 해진 짚신 한 켤레를 꺼내 정성스레 내려놓았더랍니다. 짚신 바닥에는 붉은 먹으로 기이한 문양과 글씨가 희미하게 적혀 있었지요.

"이것은 북방의 신선이 신었다는 축지(縮地)의 신이오. 이를 품고 있으면 하룻밤 사이에도 천 리 밖 왜적의 동태와 조정의 기밀이 저절로 귀에 들어오니, 장사치에게는 천금을 부르는 영물이 아니겠소?"

배만득은 어이가 없었지만, 노인의 눈빛이 워낙 맑고 그 붉은 먹 글씨가 관청의 도장처럼 범상치 않아 보였기에 욕심이 덜컥 솟았더랍니다.

"좋소! 밑져야 본전이지. 내 저 썩어가는 하치장 소금 스무 가마를 줄 테니 그 신을 두고 가시오. 만약 거짓이면 당장 관아에 고발해 뼈도 못 추리게 할 테요!"

욕망에 눈이 먼 거상의 덫

유 대감은 두말없이 소금 스무 가마를 넘겨받아 굶주린 백성들에게 죽을 쑤어 나누어 주었더랍니다. 소금을 맛본 백성들은 눈물을 흘리며 유 대감의 발아래 엎드렸지요.

한편 배만득은 그 신비한 짚신을 비밀 금고에 고이 모셔두고는 날마다 귀를 기울였더랍니다. 며칠 뒤, 한양에서 내려온 보부상들 사이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지요.

"조정에서 왜란 때 군량을 빼돌리고 백성에게 소금을 독점해 폭리를 취한 간상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능지처참한다더군! 특히 삼남의 배가 놈이 첫 번째 표적이라지?"

사색이 된 배만득은 방으로 달려가 그 붉은 먹 글씨가 적힌 짚신을 꺼내 들었더랍니다. 짚신 밑바닥의 붉은 글씨를 등잔불에 비추어 자세히 뜯어보던 배만득의 등골에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흘렀지요.

'풍원부원군 유성룡 인(豊原府院君 柳成龍 印)'

붉은 문양은 신선의 부적이 아니라, 바로 전시의 모든 군사와 행정을 총괄하는 도체찰사(都體察使)이자 영의정인 서애 유성룡의 개인 낙관이었던 것입니다.

뒤바뀐 칼자루와 숨겨진 증좌

사태를 파악한 배만득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더랍니다.

"그… 그 허름한 노인네가 영의정 유성룡 대감이었단 말인가! 내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구나!"

그때 배만득의 마당으로 서슬 퍼런 포졸들과 함께 관복을 갖춰 입은 유성룡 대감이 걸어 들어왔지요. 배만득은 짚신을 머리에 인 채 마당으로 기어 나와 이마를 흙바닥에 찧으며 울부짖었더랍니다.

"대감마님! 소인이 눈이 멀어 국사(國事)를 총괄하시는 영상 대감을 몰라뵈었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유 대감은 서늘한 눈빛으로 배만득을 내려다보며 말했더랍니다.

"내 너에게 축지의 신을 주며 천하의 기밀을 들을 수 있다 하지 않았더냐. 너는 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백성의 고혈을 빨았고, 결국 그 탐욕 때문에 내 도장이 찍힌 짚신을 네 손으로 받아 간직했으니, 이것이야말로 네가 관곡(官穀)과 소금을 횡령한 움직일 수 없는 증좌가 되었다."

배만득은 뒤통수를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 멍해졌지요. 알고 보니 유 대감이 짚신에 찍어 준 붉은 인장은 관가에서 소금을 빼돌릴 때 쓰이던 암표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고, 배만득이 그 신을 금고에 보관함으로써 자신이 소금 밀거래의 주범임을 제 손으로 증명한 꼴이 되었던 것입니다.

"소인의 곳간을 모조리 열겠습니다! 창고의 소금 삼천 가마를 전부 진휼청에 바칠 터이니 제발 참형만은 면해 주십시오!"

배만득은 바들바들 떨며 창고 열쇠 뭉치를 두 손으로 바쳤더랍니다.

맺으며

유성룡 대감은 체면도 권세도 다 벗어던진 채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짚신 한 켤레로 백성의 목숨을 살릴 소금 삼천 가마를 얻어내었더랍니다. 백성들은 짠 소금 국물을 들이켜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고, 탐욕스럽던 배만득은 전 재산을 털어 속죄하느라 평생 빈손으로 살아야 했지요.

진정한 큰 지혜란 높은 누각에 앉아 벼슬을 뽐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백성의 신발이 되어주는 데 있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혹시 여러분도 자신을 한껏 낮추어 남의 굳게 닫힌 마음을 기적처럼 열어젖힌 이야기를 알고 계신지요?

다음 이야기 예고: 밤마다 무덤가에서 소복 차림으로 엿을 고는 기이한 과부의 비밀

※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 야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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