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지붕을 뚫은 붉은 지네의 꿈으로 역적의 은밀한 독살을 막아낸 야경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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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꽉 막힌 구중궁궐 한가운데서 용상이 피를 토하고 무너지는데, 어찌 네놈 같은 일개 야경꾼이 그 흉조를 미리 보았단 말이냐!"
의금부 앞뜰 차디찬 박석 위에 붉은 피가 흥건하게 튀었더랍니다. 쇠사슬에 꽁꽁 묶여 엎드린 사내의 등짝 위로 매서운 형장이 사정없이 내리꽂히고 있었지요.
어둠을 깨우는 순라꾼의 기이한 잠꼬대

때는 조선 인조 임금 시절, 한양 도성의 밤은 그 어느 때보다 음산하고 뒤숭숭했더랍니다. 도성의 야간 통행을 감시하고 순찰을 도는 경수소의 말단 야경꾼 배칠복은 본래 천성이 우직하고 잠귀가 밝은 사내였지요. 칠복의 소원은 그저 늙은 홀어머니에게 흰쌀밥 한 번 배불리 대접하고 무탈하게 늙어가는 것뿐이었답니다.
그런 칠복이 어느 날 밤, 야경을 서다 깜빡 든 선잠 속에서 기괴망측한 꿈을 꾸었더랍니다. 인정(人定)이 지나 사위가 고요한데, 대궐 근정전 지붕 기와를 뚫고 집채만 한 붉은 지네 한 마리가 기어 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지네는 징그러운 백 개의 다리로 금빛 용상을 칭칭 휘감더니, 옥좌 아래 숨겨진 은색 주전자 속으로 시커먼 독침을 뚝뚝 떨어뜨렸지요.
꿈에서 소스라쳐 깬 칠복은 숨을 헐떡이며 옆자리 동료에게 헛소리처럼 중얼거렸더랍니다.
"이보게, 대궐 지붕에서 붉은 지네가 내려와 임금님의 은주전자에 독을 탔네. 이건 분명 나라에 큰 변괴가 생길 불길한 징조야!"
불행히도 그 혼잣말은 경수소를 지나가던 포도청 군관의 귀에 곧장 들어가고 말았지요. 임금의 안위를 저주하고 궁궐을 능멸했다는 죄목으로 칠복은 동이 트기도 전에 포박되어 의금부로 압송되었답니다.
피 묻은 국문장과 영의정의 살기

의금부 당상관 자리에 앉아 칠복을 심문한 자는 조정을 쥐락펴락하던 권신, 판의금부사 윤흥선 대감이었습니다. 윤 대감은 왕실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척했으나, 실상은 임금을 시해하고 어린 대군을 허수아비로 세워 권력을 독점하려는 흉포한 야심을 품고 있었지요.
윤흥선은 번뜩이는 눈으로 결박당한 칠복을 노려보며 호통쳤더랍니다.
"감히 미천한 야경꾼 놈이 괴이한 요설로 민심을 어지럽히고 전하를 저주해? 배후가 누구냐! 누구의 사주를 받고 그런 흉악한 꿈 이야기를 지어냈느냐!"
칠복은 피를 토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지요.
"대감마님! 정말로 꿈을 꾸었을 뿐입니다!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 지네의 이마에는 붉은 점 세 개가 박혀 있었고, 주전자 꼭지에는 모란꽃이 새겨져 있었습니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서릿발 같던 윤흥선의 눈동자가 형편없이 흔들렸더랍니다. 칠복은 보지 못했으나, 윤흥선의 갓끈 아래 목덜미에는 태어날 때부터 박힌 붉은 점 세 개가 선명하게 숨겨져 있었지요. 게다가 윤흥선이 궁녀를 매수해 임금의 수라간에 몰래 들여놓은 독약병이 바로 모란꽃이 양각된 은주전자였던 것입니다. 윤흥선은 칠복이 자신의 대역모를 눈치채고 일부러 떠벌린 첩자라 단정하고, 그 자리에서 입을 틀어막아 죽이려 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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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 아래 떨어진 비단 주머니

"저놈은 사악한 요귀에 씐 자다. 당장 곤장 백 대를 쳐서 숨을 끊어라!"
망나니 같은 옥졸들이 몽둥이를 치켜든 바로 그 찰나, 의금부 솟을대문이 활짝 열리며 벽력같은 소리가 울렸더랍니다.
"멈추어라! 과인이 직접 이 기이한 자를 친국하겠다!"
민심을 살피려 미행을 나섰다가 소문을 들은 임금이 직접 행차한 것이었지요. 윤흥선은 당황하여 안색이 하얗게 질렸으나, 능구렁이처럼 엎드리며 아뢰었더랍니다.
"전하, 요망한 잡놈의 헛소리일 뿐이옵니다. 국청을 더럽힐 가치도 없사옵니다."
하지만 칠복은 살기 위해 마지막 힘을 다해 임금을 향해 기어가며 외쳤지요.
"전하! 지네의 독침이 떨어진 은주전자는 헛것이 아닙니다! 삼 일 전 축시, 순찰을 돌 때 대궐 담장 밑에서 궁녀 복장을 한 자가 떨어뜨린 모란꽃 문양의 비단 끈을 제가 주워 품에 넣어 두었나이다!"
칠복의 찢어진 옷고름 틈에서 피 묻은 비단 주머니 하나가 툭 떨어졌더랍니다. 그 주머니는 대궐 수라간 상궁들만이 허리에 차는 특수한 어용 비단이었고, 안쪽에는 은밀한 약재 이름이 적혀 있었지요. 임금의 눈빛이 매섭게 가라앉았더랍니다.
"당장 대전의 수라간 은주전자를 가져오너라!"
드러난 역모와 용상 앞의 대반전
가져온 모란꽃 은주전자 안쪽을 은비녀로 긁어내자, 비녀 끝이 찰나의 순간에 새까맣게 변해버렸더랍니다. 참으로 칠복의 꿈대로, 은밀한 독약이 매일 아침 임금이 마시는 숭늉에 스며들고 있었던 것이지요.
수라간 나인이 끌려와 모진 고신을 받자, 사시나무 떨듯 떨며 윤흥선의 이름을 실토하고 말았더랍니다.
"흥선 대감께서… 대감께서 시키신 일입니다요! 일을 마치면 저를 정실부인으로 삼아주신다 하였습니다!"
윤흥선은 발뺌하려 발악했으나, 칠복이 주운 비단 주머니에 찍힌 먹글씨는 다름 아닌 윤흥선의 호인 '운암(雲巖)'의 낙관이었지요. 치밀했던 역적의 흉계가 일개 야경꾼이 주워둔 비단 끈과 그날 밤의 꿈으로 인해 낱낱이 까발려진 순간이었답니다.
윤흥선과 그 무리는 대역부도죄로 대역죄인이 되어 멸문지화를 당하고 참형에 처해졌더랍니다. 임금은 목숨을 건진 것에 크게 감복하여 칠복을 어전으로 불러올렸지요.
"천지신명이 네 우직한 충심을 어여삐 여겨 꿈으로 과인을 구하였구나."
미천한 야경꾼 배칠복은 그 자리에서 정구품 훈도 벼슬을 제수받고, 늙은 어머니에게 평생 먹을 흰쌀과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하사받았더랍니다. 칠복은 이후로도 밤마다 도성을 돌며 백성들의 안녕을 지켰고, 사람들은 그를 '귀신도 속이지 못하는 신통한 야경관'이라 부르며 칭송했지요.
맺으며
사람의 깊은 흉계가 아무리 은밀하다 한들, 하늘은 가장 낮은 자의 꿈을 빌려서라도 그 죄를 세상에 드러내는 법이더랍니다. 칠복이 꿈속에서 본 붉은 지네는 실상 역적의 시커먼 탐욕 그 자체였던 셈이지요. 여러분도 혹여 밤길을 걷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이한 꿈을 꾸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다음 이야기 예고: 밤마다 무덤가에서 은가락지를 씻는 어여쁜 귀신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 야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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