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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에서 주운 엽전 세 닢을 삼켰다가 만석꾼의 곳간을 모조리 털어버린 소작농

지은미소 2026. 10. 2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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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늦가을 해질녘, 황해도 곡산 관아 앞마당에 피투성이가 된 사내가 멍석 위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입가에는 시커먼 피와 진흙이 뒤엉켜 있었고, 그를 둘러싼 포졸들은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사내의 불룩한 배를 내려다보고 있었지요.

진흙탕에서 건진 놋쇠 조각

숙종 삼십이년, 황해도 곡산 땅에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가난한 소작농 박칠복이 살고 있었습니다.

칠복은 성품이 우직하고 순진하여 남을 속일 줄 몰랐으나, 늙은 홀어머니의 기침병을 고칠 약 한 첩 살 돈이 없어 늘 가슴을 쥐어뜯었지요.

칠복이 부치는 논밭의 주인은 고을에서 소문난 만석꾼 배 진사였습니다.

배 진사는 백성들의 피땀을 쥐어짜 피도 눈물도 없이 곳간을 채우는 것으로 악명이 자자한 자였지요.

어느 날 칠복은 논두렁을 기어가다 진흙 구덩이 속에 반짝이는 놋쇠 세 조각을 발견했습니다.

손으로 흙을 털어내니 묵직하고 푸르스름한 녹이 슨 엽전 세 닢이 아니겠습니까.

"아이고, 하늘이 날 살리시는구나! 이 세 닢이면 어머니 탕약에 조 삼 되를 지어 드릴 수 있겠어!"

칠복은 눈물을 글썽이며 엽전을 소매 깊숙이 찔러 넣고 장터 약방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만석꾼의 불호령과 목구멍으로 넘어간 엽전

약방으로 향하던 길목에서 호화로운 비단 가마를 탄 배 진사 일행과 딱 마주쳤습니다.

가마 옆을 지키던 덩치 큰 노복 칠손이가 칠복의 덜덜 떨리는 손과 소매 끝의 불룩한 모양새를 놓치지 않았지요.

"게 섰거라! 상것이 어찌 어르신 가마 앞을 건방지게 가로막느냐! 네 소매 속에 감춘 것이 무엇이냐?"

배 진사가 가마 발을 걷어 올리며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더니 헛기침을 뱉었습니다.

"고놈 낯짝이 흙빛이로구나. 장원 사랑채에서 귀한 엽전 꾸러미가 사라졌는데, 네놈 행색이 딱 도둑놈 꼴이로다."

칠복은 억울함에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빌었습니다.

"진사 나으리, 절대 도둑질이 아닙니다요! 길가 진흙탕에 떨어진 엽전 세 닢을 주웠을 뿐입니다!"

배 진사는 가소롭다는 듯 차갑게 비웃으며 턱짓으로 명령을 내렸더랍니다.

"네놈 말대로 주운 것인지 내 돈인지 관아에 가서 볼기짝을 맞으며 가려보자꾸나. 칠손아, 저놈의 품을 뒤져 돈을 뺏어라!"

칠손이가 쇠갈고리 같은 손으로 칠복의 멱살을 잡고 소매를 찢어발기려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약값을 빼앗기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눈이 뒤집힌 칠복은, 엽전 세 닢을 입에 털어 넣고 그대로 꿀꺽 삼켜버렸습니다.

철창 속에서 드러난 기괴한 소리

"컥, 컥! 으윽!"

거친 동전 세 닢이 식도를 긁고 내려가자 칠복은 목을 쥐어뜯으며 피를 토했습니다.

배 진사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혀를 찼지요.

"도둑질한 증거를 몸속에 숨겨? 포졸들을 불러라! 저놈의 배를 갈라서라도 내 돈을 꺼내야겠다!"

칠복은 그대로 관아 옥사로 끌려가 차디찬 바닥에 팽개쳐졌습니다.

소식을 들은 곡산 현감 조태식은 탐욕스럽기로는 배 진사 못지않은 탐관오리였습니다.

배 진사는 현감의 내실로 은밀히 찾아가 황금 열 냥을 쥐여주며 속삭였습니다.

"사또, 놈의 배 속에 든 엽전은 제집 가보로 내려오는 특별한 '삼문전'입니다. 배를 째든 약을 먹이든 증거를 꺼내 목을 베어주십시오."

현감은 칠복에게 강제로 피마자 기름과 잿물을 퍼부어 설사를 유도하고 구역질을 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엽전은 위장 깊숙이 박힌 듯 나오지 않았고, 칠복이 숨을 헐떡일 때마다 뱃속에서 기괴하게 짤랑거리는 쇠 부딪치는 소리만 울렸지요.

"사또 나으리, 저는 결백합니다! 그 돈에는 진사 나으리의 표식이 아니라 흉악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요!"

칠복은 피를 토하면서도 악착같이 소리쳤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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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속에서 쏟아져 나온 역모의 증거

사흘째 되던 날, 배 진사가 현감을 독촉하여 마침내 형틀에 칠복을 묶고 칼을 든 망나니를 세웠습니다.

칠복의 입에 억지로 토제(吐劑)를 한 바가지 들이붓자, 칠복이 비명을 지르며 검붉은 피와 함께 엽전 세 닢을 와락 토해냈습니다.

동전 세 닢이 관아 마루 바닥을 요란하게 구르며 현감의 발치에 멈춰 섰지요.

배 진사가 희색이 만면하여 외쳤습니다.

"보십시오! 놈의 배에서 나온 장물의 증거입니다! 당장 능지처참하십시오!"

현감이 흐뭇하게 웃으며 핏물이 묻은 엽전을 집어 들고 비단 소매로 닦아냈습니다.

그러나 엽전에 새겨진 글씨를 확인한 현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습니다.

그것은 일반 통용 엽전인 상평통보가 아니었습니다.

뒷면에 은밀하게 음각으로 '평양 대원수(平壤 大元帥)'라는 역모의 표식이 또렷하게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이 돈은 북쪽의 역당들이 비밀리에 군자금을 모을 때 쓰던 사주전(私鑄錢)이 아니더냐!"

배 진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얼어붙은 듯 굳어버렸고,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습니다.

사실 그 엽전 세 닢은 배 진사가 북방의 역모 세력과 내통하며 묻어둔 비밀 군자금 상자에서 심부름꾼이 흘린 치명적인 증거였습니다.

배 진사는 그것이 자신의 역모 자금인 줄 까맣게 모르고, 단순히 가난한 소작농이 쥐고 있던 돈을 탐내어 제 발로 관아로 끌고 온 셈이었지요.

"네놈이 이 돈이 네 사랑채에서 사라진 네 가보라 하였겠다? 배 진사, 네놈이 역모의 괴수였더냐!"

현감은 칠복의 도둑질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자신의 목숨줄이 달린 역모 사건을 잡았다는 생각에 눈을 번뜩이며 호통쳤습니다.

"아닙니다! 사또, 저놈이 어디서 주워온 흉물입니다! 제 돈이 아닙니다요!"

배 진사가 땅바닥에 엎드려 울부짖었으나 이미 늦었습니다.

자신의 입으로 '내 집 사랑채에서 도둑맞은 돈'이라고 사또와 온 관아 하인들 앞에서 수차례 증언했기 때문이지요.

만석꾼의 최후와 새어 나오는 온기

관아 포졸들이 즉시 배 진사의 집으로 들이닥쳐 만석꾼의 안채 마루 밑과 곳간을 샅샅이 파헤쳤습니다.

그곳에서는 과연 칠복의 뱃속에서 나온 것과 똑같은 '대원수' 표식이 찍힌 엽전 수천 닢과 반역의 밀서가 쏟아져 나왔더랍니다.

배 진사는 한양 의금부로 압송되어 저잣거리에서 능지처참을 당했고, 가산은 모조리 적몰되어 국고로 환수되었습니다.

역모를 고변하고 증거를 목숨 걸고 품어 지켜낸 꼴이 된 칠복에게는 나라에서 막대한 포상금과 함께 배 진사가 착취했던 옥토 백 마지기가 하사되었지요.

칠복은 그 돈으로 어머니의 기침병을 말끔히 고쳤고, 굶주린 이웃 소작농들에게 땅을 거저 나누어 주며 평생을 존경받으며 살았습니다.

맺으며

남의 것을 한 푼이라도 더 빼앗으려던 만석꾼의 탐욕이, 결국 제 목을 베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돌아왔으니 세상일이란 참으로 묘하지 않습니까.

목숨을 걸고 삼킨 동전 세 닢이 피눈물 나는 가난뱅이의 운명을 하룻밤 사이에 바꾼 셈이었지요.

여러분도 혹 길가에 떨어진 하찮은 물건 하나가 거대한 권력가를 무너뜨렸다는 기이한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다음 이야기 예고: 깊은 밤, 공동묘지에서 들려온 아기 울음소리를 따라간 백정의 손에 들린 붉은 주머니의 비밀.

※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 야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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