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좁쌀밥을 쪼갠 선비가 거지 노인의 부러진 숟가락으로 목숨을 건진 사연

▶ 유튜브 채널 「조선시대야담」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매서운 삭풍이 문살을 덜덜 떨게 하던 숙종 8년 동짓달, 전라도 남원골 뱀사골 어귀의 쓰러져가는 초가삼간에서는 희미한 한숨 소리만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궁이에는 땔감이 없어 냉골이 된 지 오래였고, 윗목에 놓인 옹기그릇에는 바닥을 긁어모아 겨우 지은 거친 좁쌀밥 딱 반 공기만이 식어가고 있었지요.
얼어붙은 좁쌀밥과 불청객

이 오두막의 주인은 이진사 댁의 외아들 조우현이라는 젊은 선비였습니다. 성품이 대쪽처럼 곧아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려 했으나, 부모가 잇따라 역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로는 가세가 기울어 끼니를 잇기도 벅찼지요. 우현은 그저 묵묵히 글을 읽으며 훗날 백성을 널리 이롭게 할 날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가 막 수저를 들어 그 귀한 좁쌀밥 한술을 뜨려던 찰나였습니다.
"삐거덕—"
싸립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허연 서리를 머리에 뒤집어쓴 늙은 거지 하나가 방 문턱으로 고꾸라지듯 쓰러졌습니다. 누더기는 넝마가 되어 살갗이 얼어터졌고, 손발은 시퍼렇게 질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형국이었지요.
"선비님… 사흘 밤낮을 물 한 모금 못 마셨소. 제발 적선 좀…"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낡아빠진 나무 숟가락 하나를 꺼내 밀었습니다. 손잡이 끝이 비스듬히 쪼개져 칡넝쿨로 칭칭 동여맨, 참으로 볼품없는 숟가락이었습니다.
쪼개진 밥상과 기묘한 징표

우현은 망설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을 부축해 아랫목으로 이끌었습니다. 비록 온기는 없었으나 바람막이는 되어줄 자리였지요.
"어르신, 소생에게도 남은 곡기라곤 이 밥 반 공기가 전부입니다. 허나 사흘을 굶으셨다니 이대로 두면 명이 다하시겠습니다."
우현은 숟가락으로 그 메마른 좁쌀밥을 정확히 반으로 쪼갰습니다. 한 숟갈이라도 더 먹어야 내일 아침을 버틸 수 있었지만, 남의 죽음을 보고도 제 배만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자, 식어서 맛은 없겠으나 어서 드시고 기운을 차리십시오."
노인은 쪼개진 좁쌀밥을 허겁지겁 삼키더니, 우현의 맑은 눈망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선비님, 어찌하여 남은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마지막 밥을 낯선 거지에게 쪼개어 주십니까?"
"군자는 곤궁함 속에서도 인(仁)을 잃지 않는 법이라 배웠습니다. 밥 한 술은 나누면 두 사람의 숨이 되지만, 혼자 삼키면 그저 욕심의 찌꺼기일 뿐이지요."
그러자 노인은 품에서 자신이 쥐고 있던 그 부러진 나무 숟가락을 건넸습니다.
"내 가진 것이라곤 이 몽당 숟가락뿐이오. 칡넝쿨로 묶인 이 금을 기억하시오. 머지않아 선비님의 목숨이 경각에 달릴 때, 반드시 이 숟가락 끝을 부러뜨려 속을 보아야 하오."
말을 마친 노인은 우현이 말릴 새도 없이 문을 열고 눈보라 속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탐관오리의 덫과 형틀 위의 비명
노인이 떠나고 이레 뒤, 남원골에 큰 사단이 벌어졌습니다. 남원 부사로 부임한 배익호라는 자는 본디 탐욕이 들끓어 백성의 고혈을 짜내기로 악명 높은 간관이었습니다. 배익호는 조정에 바칠 군포를 사사로이 착복하고는, 이를 감추려 고을 선비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옥사를 일으켰지요.
"조우현이라는 놈이 역모를 꾀하며 관아의 군량을 빼돌렸다! 당장 그놈을 포박하라!"
배익호의 사주를 받은 포졸들이 들이닥쳐 우현을 결박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관아 동헌으로 끌려간 우현은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네놈이 남원의 불령선인들과 작당하여 난을 획책했렷다! 순순히 자복하지 않으면 살점을 다 발라낼 것이다!"
배익호가 붉은 수염을 바르르 떨며 호통을 쳤습니다.
"사또! 벼슬도 없는 가난한 유생이 어찌 군량을 손대며 역모를 꾀한단 말입니까! 이는 명백한 모함입니다!"
우현이 결백을 외쳤으나 돌아온 것은 모진 곤장이었습니다.
"찰싹! 찰싹!"
형틀에 묶인 우현의 다리에서 핏물이 배어 나오고 살점이 찢겨 나갔습니다. 배익호는 간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네놈이 끝내 불지 않으니 당장 참형에 처해 효수하겠다! 오늘 오시(午時)에 목을 베어 성문에 걸어라!"
▶ 이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 보세요
절체절명의 순간, 부러뜨린 숟가락
우현은 차디찬 옥바닥에 팽개쳐졌습니다. 형 집행까지 남은 시간은 반나절도 되지 않았지요. 억울함에 피눈물이 흘렀고, 무너진 가문을 다시 일으키기는커녕 대역죄인의 오명을 쓰고 죽어야 한다는 절망감이 엄습했습니다.
그때 문득 품 안에서 딱딱한 응어리가 만져졌습니다. 바로 며칠 전 그 거지 노인이 건네준 부러진 나무 숟가락이었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릴 때, 반드시 이 숟가락 끝을 부러뜨려 속을 보라…'
노인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이제 몇 시진 뒤면 목이 잘릴 터인데 더 망설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현은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칭칭 감고 있던 낡은 칡넝쿨을 뜯어냈습니다. 그리고 손잡이의 쪼개진 틈을 양손으로 쥐고 힘껏 꺾어 부러뜨렸습니다.
"탁!"
단단한 대추나무 숟가락 속이 쪼개지며 붉은 비단에 싸인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쇳조각과 먹으로 쓴 작은 종이쪽지가 툭 떨어졌습니다. 비단을 벗기자 햇살 한 줌 없는 감옥 안에서도 번쩍이는 서슬 퍼런 놋쇠 조각, 바로 조정에서 비밀리에 하사하는 암행어사의 밀표(密票)였습니다.
종이쪽지에는 굵은 필치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午時, 銅軒(오시, 동헌).'
암행어사 출두야!
마침내 오시가 되자 관아 마당에는 서슬 퍼런 망나니가 칼춤을 추며 우현의 목을 칠 준비를 마쳤습니다. 배익호는 높은 의자에 앉아 거만하게 부채질을 하고 있었지요.
"죄인 조우현은 들으라. 죽어서도 네 죄를 원망치 마라. 망나니는 어서 칼을 받아라!"
배익호가 사형을 명하는 붉은 패를 마당에 던지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암행어사 출두야! 암행어사 출두요!"
동헌 담장을 뒤흔드는 벽력같은 고함과 함께 역졸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습니다. 배익호는 기겁하여 자빠졌고 관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지요. 마당 한가운데로 의관을 정제하고 들어선 어사는 다름 아닌, 며칠 전 굶주려 쓰러졌던 바로 그 늙은 거지였습니다.
호조참판을 지내다 영남과 호남의 탐관오리를 척결하라는 어명을 받고 비밀리에 암행 중이던 어사 박문수 대감이었습니다.
"배익호, 네놈이 백성의 피땀을 쥐어짜고 죄 없는 선비까지 죽여 죄를 덮으려 했으니, 네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이다!"
어사의 추상같은 호통에 배익호는 사색이 되어 무릎을 꿇고 벌벌 떨었습니다.
어사는 형틀에 묶인 우현의 포승줄을 직접 풀어주며, 쪼개진 숟가락을 쥔 우현의 피 묻은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었습니다.
"선비 조우현을 보아라. 제 마지막 곡기를 쪼개어 죽어가는 늙은이를 살렸고, 그 의로움으로 감춘 흉계를 밝혀내었도다. 의로운 자가 고초를 겪는 세상은 이제 끝났다."
맺으며
배익호는 그 자리에서 관작을 삭탈당하고 먼 변방의 위리안치형에 처해졌으며, 우현은 누명을 벗고 이듬해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백성을 보살피는 훌륭한 목민관이 되었답니다. 가진 것이 좁쌀 반 공기뿐일지라도 기꺼이 쪼개어 나누었던 그 맑은 마음이, 끝내 부러진 숟가락 속에 깃들어 제 목숨을 살려내는 기적이 되었던 것이지요.
혹 여러분도 길을 걷다 마주친 남루한 이에게 온정을 베풀었다가 뜻밖의 은혜로 되돌아왔던 옛이야기를 알고 계시는지요?
다음 이야기 예고: 한밤중 주막에서 사라진 백 냥, 소금 장수의 젖은 버선 속에 감춰졌던 붉은 비밀이 밝혀집니다.
※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 야담입니다.
▶ 이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 보세요